2025/02/06 14

참된 회개가 없을 때(삼하14:21-27) / 리민수 목사

참된 회개가 없을 때(삼하14:21-27) 본문은 다윗이 압살롬의 귀환을 허락함으로서(21절) 마침내 압살롬이 약 3년간에 걸친 도피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장면이다. 다윗이 이처럼 쉽게 형제를 살해한 압살롬의 귀환을 허락한 것은 압살롬에 대한 그의 부정 때문이었다. 여기서 인간이 정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지 못한 채 압살롬의 죄를 묵과했다는 것은 다윗의 큰 실수였다. 즉 다윗은 혈육의 정에 연연하기에 앞서 압살롬의 죄를 책망하고 그가 회개하도록 이끌어야 했다. 이처럼 공의가 바로 세워지지 않고 참된 회개가 없는 곳에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는 법이다.

매력자본(Erotic Capital)

매력자본(Erotic Capital)  지금은 70세를 신(新) 중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80세를 초로장년(初老長年)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말로만 중년, 장년이면 무엇합니까? 그에 걸맞은 매력적인 포인트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말로 멋지게 나이가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국 런던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였던 캐더린 하킴(Catherine Hakim)이 2010년 옥스포드대학교 저널에 매력자본(魅力資本 Erotic Capital)이라는 개념을 발표한 논문 내용을 소개합니다.  캐더린 하킴은 '매력자본(Erotic Capital)'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한마디로 매력(魅力)이 능력이요 경쟁력이라는 말입니다.  그녀가 말한 매력은 잘 생긴 외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유머 ..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25-26) / 이금환 목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태복음23:25-26)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답고, 멋있고, 세련되어 보입니다. 말도 잘하고, 처세도 잘합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잔과 대접의 겉, 즉 겉으로 드러난 사람의 모습은 그럴듯하고, 근사하고, 매력적이기까지 하지만 잔과 대접의 안쪽이 잘 닦이지 않은 것처럼 속 사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들도 그러했고, 그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속 사람을 깨..

노동절 / 정용섭 목사

오늘은 노동절이었다. 대다수의 직장이 문을 닫은 것 같다. 이렇게 하루 쉰다고 해서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잠시 유예될 뿐이다. 노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노동 없이 인간 삶은 유지될 수도 없다. 인간의 얼굴을 한 노동이 필요할 뿐이다.   어떤 것이 과연 인간의 얼굴을 한 노동인가? 자기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것만큼 받아가는 세상에 대한 마르크스의 꿈을 공산주의가 실현해보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 역시 노동 해방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나은 것이 북 유럽의 복지 체제인데, 거기에 도달하는 것도 요원하거니와 도달했다고 해서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ora et ..

독생자의 영광(요 1:14), 요한복음 묵상(9) / 정용섭 목사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에게서 영광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도대체 영광은 무엇인가? 저 단어는 일상적으로도 사용된다. 나의 영광이라거나,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들을 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영광은 신적인 차원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영광은 일종의 신적인 빛이자, 능력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어떤 현상이기도 하다.   예수의 영광은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한다. 초기 기독교가 예수에게서 하나님과 동일한 힘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생명의 심층적인 능력이다. 겉으로 드러난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은 우리가 판단하는 그런 기준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그분만의 고유한 능력이 예수에게 나타났다는 뜻이다..

파리잡기 / 정용섭 목사

어제 대구샘터 교우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신 분들 대부분과 그 외의 몇 분까지 포함해서 여러분들이 오셨다. 함께 노래 부르고, 먹고, 마시고, 개별적으로 쑥 캐고 산책하고,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여러분들이 올 때마다 동행하는 생명체가 있다. 파리다. 손님들은 예정 시간에 맞춰 돌아가지만 파리는 그대로 머문다. 돌아갈 집이 없는지, 길을 잃었는지, 우리 집이 좋다고 여긴 탓인지 모르겠으나 제법 많은 파리가 남았다.   파리와 같이 살아도 큰 문제가 없지만, 불결하다는 선입관 탓에 (그리고 가족들 성화에), 그리고 실제로 옆에서 날아다니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최선은 그냥 집밖으로 쫓아내는 거다. 그게 쉽지 않다. 창문을 열고 아무리 내보려고 해도 ..

성육신(요 1:14), 요한복음 묵상(8) / 정용섭 목사

요 1:14절은 요한복음의 여러 구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할 뿐만 아니라 중요하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곧 성육신(incarnation)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 육신(肉身)을 이루었다(成)는 뜻이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성육신은 하나님 상에 대한 혁명적인 전환이다. 유대교가 기독교의 다른 것은 다 인정할 수 있어도 이것만은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초월적이다. 하나님은 구체화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어떤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기독교도 똑같이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바로 그 하나님이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고 믿는다. 그분이 곧 예수다...

쓰레기 / 정용섭 목사

어제 쓰레기 처리 문제로 북안면 사무소를 찾아갔다. 쓰레기를 종류에 따라서 분류해 마대에 담아 내놓은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수거해가지 않은 이유를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이다. 문서를 보더니 매주 목요일에 원당리에 청소차가 간다고 한다. 원당리 주민들의 말을 들으면 일 년에 한 차례만 청소차가 온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담당 공무원과 마을 주민의 말이 완전히 달랐다.   저간의 사정은 이랬다. 청소차가 원당리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입구의 공장 지역에만 오는 것 같다. 원당리 마을에는 들어올 필요가 없었다. 마을에서 쓰레기가 별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 쓰레기는 많이 나오지 않기도 하지만, 생긴 쓰레기도 짐승에게 먹이거나 땅에 묻으면 그만이다. 소주병이나 맥주병은 슈퍼에서 가..

하나님 나라에 기여할 기회를 포착하라(에스더 2:1-7) / 원용일 목사

하나님 나라에 기여할 기회를 포착하라(에스더 2:1-7)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을 얼마나 하십니까? 오래전 딸아이에게 성경 동화책에서 오병이어 이적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녁이 될 때까지 배고픈 줄도 모를 정도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들었다는 내용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눅 9:11 참조).에스더 2:1-7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2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3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

나는 과연 복음 전도자인가? / 봉민근

나는 과연 복음 전도자인가?       글쓴이/봉민근복음 전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드러 내는 일이다.복음을 전하지 않 는 것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사실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다는 증거다.교회 와서는 성도 같고 예수 이름을 찬양하나 세상에 나가서는 예수에 "예"자도 말할 수 없다면어찌 그를 믿는 자라 할 수 있겠는가?그리스도인은 한없이 예수님의 그 이름이 자랑스러워야 한다.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분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처럼 배은 망덕한 일은 없다.오늘날 한국 사회가 부요해져서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는 현상이 두드러짐을 본다.하나님 없이도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곧 저주라는 사실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