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8 14

억울함을 당했는가? / 봉민근

억울함을 당했는가?        글쓴이/ 봉민근           억울함을 당했는가?변명하지 마라.하나님 앞에 직설하라.사람들이 나를 몰라 줘도 개의치 마라.하나님이 아시면 된다는 믿음으로 살아라.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억울함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것이다.내가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마라.오히려 하나님 앞에 득죄할 수 있다.믿는다는 것은 순교적인 삶을 살기를 기뻐하며 사는 것이다.초대교회 사도들이 주를 위하여 능욕당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오히려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의 상대는 사람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시다.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 말씀하지 않으셨던가?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지 않던가?우리가 할 일은 원수를 위하여 기도 함으로 숯불을 그 머리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마시..

하나님의 아들, 요한복음 묵상(16) / 정용섭 목사

세례 요한은 비둘기 같은 성령 현상을 보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요 1:34). 앞에서 본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자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성령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생명을 준다는 뜻이다. 생명을 주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의 전권에 속한다.   물론 예수 믿는다고 해서 돈이 나오거나 밥이 나오는 건 아니다. 건강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만을 생명으로 안다면 예수 믿을 준비가 안 된 사람이다. 그분이 주시는 생명은 세상의 생명과는 다르다. 그게 무엇인지를 아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구약에 근거한다. 예수님을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역시 구약에 근거한다. 초기 기독교의 예수 인식은 철저하..

성령 세례, 요한복음 묵상(15) / 정용섭 목사

세례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서 예수 위에 머무는 것을 보고 예수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요 1:33).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는 자이고, 예수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라는 뜻이다.   성령 세례는 무슨 말인가? 가장 간단한 대답은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것을 가리킨다. 세례는 물에 잠긴다는 뜻이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물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것은 새롭게 산다는 뜻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 곧 성령 세례다.   그것을 성령 세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다르지 않다. 성령세례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는..

요한보다 앞선 자, 요한복음 묵상(14) / 정용섭 목사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요 1:30)고 했다. 요한복음 기자는 이미 서두에서 예수를 가리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로고스라고 말했다. 먼저 태어난 세례 요한보다 예수가 먼저 계시다는 말과 비슷한 뜻이다. 이게 말이 될까?   세상을 연대기로만 보면 이게 말이 되지 않는다. 한 달이라도 먼저 태어난 사람이 앞선 자다. 성서는 시간과 역사를 연대기(크로노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로 본다. 카이로스로 볼 때 예수는 창조의 완성이다. 즉 생명의 완성이다. 그를 통해서 종말에 일어날 영원한 생명이 선취되었다. 그 종말의 영원한 생명은 곧 태초에 있었던 창조 생명의 완성이다. 예수가 이 모든 구원역사의 중심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어린양, 요한복음 묵상(13) / 정용섭 목사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이 요 1:29절부터 시작해서 34절까지 나온다. 첫 증언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이다. 그걸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가 연상된다. 동물을 잡아서 피를 뿌리고 몸은 태운다. 물론 다 태우는 게 아니라 일부를 태운다. 나머지는 함께 제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나눠 먹거나,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동물을 번제로 바쳐서 죄의 용서를 기대했다. 요한은 그 번제 제물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본 것이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바로 인류 구원의 길이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문제는 다음이다. 왜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굳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셨을까? 다른 방법도 ..

'장난기 가득한 눈'(이성복) / 정용섭 목사

來如哀反多羅 7 불어오게 두어라이 바람도,이 바람의 바람기도 지금 네 입술에내 입술이 닿으면옥잠화가 꽃을 꺼낼까 하지만 우리이렇게만 가자,잡은 손에서 송사리떼가 잠들 때까지 보아라,우리 손이 저녁을 건너간다발 헛디딘 노을이 비명을 질러도 보아라,네 손이 내 손을 업고 간다죽은 거미 입에 문 개미가 집 찾아 간다 오늘이 어제라도 좋은 날,걸으며 꾸는 꿈은壽衣처럼 찢어진다    來如哀反多羅 8 내게로 왔던 것은사랑이 아닐지 모른다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오늘 같이 자주지 못해 미안해요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교황은 자주감자 꽃 옷을 찢고개들은 묵주반지 돌리듯 이를 간다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그대의 愛液을 맨머리로 받으면내 이마에 돗자리 자국이 생겨난다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죽음은 내 성기 끝에서 피어날지라..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 (수 24:19-33) / 신동식 목사

수 24:19-33,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여호수아는 자신의 마지막 소명을 충실하게 감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겜에 모이게 하고 신앙고백을 확인 받습니다.여호수아가 분명하게 전하는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신성과 초월성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질투하심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작정하였다면 우상을 치워 버릴 것을 명령합니다. 우상에 대한 하나님의 모습은 단호합니다. 우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질투하심에 가장 반기를 드는 행위입니다. 우상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우상숭배에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세대의 공통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것..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행27: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행27:44)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로 이송되는 사도 바울. 항해 도중 광풍을 만나 구원의 여망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갈 수 있는 믿음의 순례길. 나의 나 됨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나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눅6:49) / 이금환 목사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6:49) 사람이 들은 대로, 아는 대로 사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깊이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냥 평범한 언어로 "잘 지키고, 잘 행하렴!"이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냥 흘려 들을 것을 아셨으므로 이렇게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 그런 인생은 말이야, 비가 조금만 내려도 박살나고, 흔적도 없이 씻겨 내려가는 위태위태한 집과 같다고나 할까?" 혹시 실패해 보고, 망해 보고, 나락으로 떨어져 보았습니까? 누구의 삶에라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반역자가 된 아들(삼하15:1-12) / 리민수 목사

반역자가 된 아들(삼하15:1-12) 본문은 압살롬이 주도면밀한 사전 준비 끝에 마침내 반역의 기치를 높이 드는 장면이다.  압살롬은 반역을 위해 두가지를 준비했다. 첫째는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둘째는 다윗에게 향했던 민심을 자신에게로 돌아서도록 했던 것이다. 이처럼 압살롬은 백성들과 다윗을 기만하면서 4년 동안 반역을 준비한 끝에 마침내 헤브론에서 반역 정부를 세우고 왕으로 자처했다. 그 과정에서 압살롬은 자신의 반역의 음모를 숨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까지 악용하는 극악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사단의 궤계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