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1934

하나님 나라(5) / 정용섭목사

하나님 나라(5) 오늘 그대에게 들려줄 판넨베르크의 글은 다른 때보다 조금 기오. 한 패러그래프를 몽땅 인용하는 탓에 그렇게 되었소. 인내심을 갖고 함께 들어보십시다. 하나님을 미래의 힘이라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이라는 말은 새로운 구체성을 획득한다. 우리가 ‘미래의 힘’이라고 말할 때 훨씬 더 현실적인 과거나 현재와 비교해서 무미건조하고 막연한 미래라는 개념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래는 공허한 세계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미래를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연구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래는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고 계획할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항상 삶을 위협하거나 성취를 약속하기도 하는 어둡고 불확실한 힘인 미래에 직면한다. 과학 철학에서 전개되어야 할 여러 가..

하나님 나라(4) / 정용섭목사

하나님 나라(4)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를 미래에 속하는 현실성(reality)이라고 선포했다. 이것이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이다. 이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유대교적 대망의 한 전통적 관점이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주장은 기본적으로 오고 있는 그의 통치에서 제시되어야 한다는 예수의 이해가 새로운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의 통치와 그의 존재는 불가분리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는 아직 존재의 과정에 놓여 있다.(75) 그대에게 꺼림칙하게 들리는 구절이 위 인용문에 있을 것 같소. 하나님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거요? 하나님이 존재의 과정에 놓여 있다니, 그렇다면 그분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거요? 신학자들의 말..

하나님 나라(3) / 정용섭목사

하나님의 존재는 하나님의 통치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종교 철학의 언어로 말한다면 신들의 존재는 그들의 힘이라는 것이다.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은 유일의 힘이 모든 것을 통치한다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신경의 제 1항을 해설하면서 루터는 천지를 창조할 수 있는 신만이 참된 신이라고 말했다. 자기를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드러내시는 신만이 참되시다. 이것은 유한한 존재자들을 떠나서는 하나님이 하나님일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다른 어느 누구 또는 어떤 것 없이도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게 옳다. 유한한 존재자들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성이다. 하나님의 신성은 그의 통치이다.(75)  그대에게 오늘 말할 내용은 아주 초보적인 것이라서 재..

하나님 나라(2) / 정용섭목사

그대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소? 사실 그 이름을 알면 어떻게 모르면 어떻겠소. 다만 생존해 있는 개신교 신학자들 중에서 거장에 속한 인물이니 그대 같은 지성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저 이름쯤 알아둬서 나쁠 건 없소. 독일 슈테틴에서 1928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여든 두 살이 되는가 보오. 판넨베르크와 동시대를 살면서 쌍벽을 이룬 독일의 또 다른 개신교 조직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한국교회와 인연이 깊은데 반해서 판넨베르크는 그렇지 못한 게 좀 아쉽소. 몰트만이 진보 보수 막론하여 한국의 여러 교파의 신학교와 교회로부터 초청을 받아 열 번(?) 가까이 한국을 방문한데 비해서 그는 2001년 10월에 딱 한번 방문했소..

하나님 나라(1) / 정용섭목사

앞으로 당분간 기회가 닿는 대로 그대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을 걸겠소이다. 하나님 나라만큼 성서에서 중요하면서도 교회에서 오해되는 개념도 없을 거요.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이 결국은 하나님 나라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고, 또한 하나님 나라를 공간적인 차원의 천당으로만 생각한다는 점에서 오해되고 있다는 말이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것만큼 우리의 신앙도 깊이를 더해가지 않을까 생각하오. 바라기는 ‘하나님 나라’를 골치 아픈 것으로 여기고 미리 겁내거나 멀리하지 마시구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책 (이병섭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77년, 1985년, 제 3판)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겠소. 인용문 끝 괄호 안의 숫자는 이 책의 쪽수요. 번역문을 그대로 ..

재의 수요일 / 정용섭목사

그대, 오늘은 ‘재의 수요일’이라오. 성회(聖灰)수요일이라고도 부르오. 오늘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 거요. 사순절(四旬節)은 부활절 전날부터 거꾸로 계산해서 주일을 뺀 40일 기간을 가리키오. 전통적으로 사순절에는 몇 가지 전통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과 연관된다오. 신자들이 교회에 가서 재를 이마에 바르는 거요. 그대여, 우리는 모두 재로 돌아가오. 오래 살든 짧게 살든 어느 누구도 가릴 것 없이 우리는 똑같이 먼지로 돌아가오. 여기에는 왕으로 살았든 거지로 살았던 아무런 차이가 없소이다. 성자로 산 사람과 악당으로 산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라오. 모두 불쌍한 운명이 아니겠소? 내 말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구려. 인생은 재의 저주를 받았으니 비탄에 빠져서 살아..

하나님의 영광 / 정용섭목사

그대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니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거요.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더라.”(사 6:3b) 가득하다고 말했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했소.(고후 4:6)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의 탄생 전승에서 다음과 같은 천사들의 합창을 전하고 있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눅 2:14a) 그 외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관한 구절을 성서에서 쉽게 찾을 수 있소이다. 그대는 성서기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뭐라고 생각하시오? 그것을 경험해보았소?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했다면 우리는 기독교인이라고 말은 할 수 있어도 기독교 영성가라고 말할 수는 없소이다. 세례를 받고 예배를 드리며 온갖 교회 생활을 충실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정용섭목사

그대는 우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지, 즉 더 확실한 것인지를 질문하고 싶소. 너무 초보적이거나 유치한 질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소. 말처럼 보이시오? 그래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하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소. 첫째, 이 질문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아주 오랜 전부터 인류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삼았던 것이라오. 인류의 오래된 전통을 우습게 보는 건 경솔한 태도요. 둘째, 오늘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과도하게 매달리며 살아가고 있소.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유물론자들처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확실한 것으로 여기면서 살아간다오. 이럴 때는 그것이 정말 확실한 건가에 대해서 꾸준히 질문하는 게 필요한 일이 아니겠소? 보이는 것이 무엇이오? 여기 ..

영혼의 안식(2) / 정용섭목사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소. 어제 말한 영혼의 안식은 도대체 무엇이오? 이걸 설명하려면 기독교 신앙 전체를 설명해야 하오. 그렇지 않소? 우선 영혼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하오. 영혼을 말하려면 영혼을 창조한 분을 먼저 말해야 할 거요. 안식은 말 그대로 참된 쉼이오. 참된 쉼은 곧 구원이 아니겠소? 그렇다면 또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말해야 할 거요. 구원은 또 무엇과 연관되겠소? 기독교에서는 왜 칭의를 구원의 토대라고 주장하는지도 설명해야겠소. 영혼의 안식으로부터 기독교 신앙 전반으로 우리의 대화가 확장된다는 걸 느끼실 거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소. 기독교 신앙의 각 항목은 늘 전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소. 거미줄을 머릿속에 그려보시오. 이쪽 끝과 저쪽 끝이 부분적으로만 본다면 상관이 없..

영혼의 안식(1) / 정용섭목사

그대는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보내셨을 줄로 아오. 우리는 모두 즐거움을 찾고 있으니, 당연히 즐거워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문제는 간혹, 또는 자주 즐겁지 않게 산다는 거요. 즐겁지 못한 이유는 찾아보면 거의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을 거요. 그런 거야 다 알고 있는 것이니 일일이 확인할 필요도 없소. 즐겁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가 일상을 심심하게 생각한다는 게 아닐까 생각하오. 이게 정확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소. 나의 주관적인 판단일지도 모르오. 심심한 걸 해소하기 위해서 더 자극적인 걸 찾고 있소.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자극적인 것만은 분명하오. 그게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오락일 수도 있소. 그런 것들은 우리의 감각을 긴장시키는 능력이 있소. 그래서 그런 것들을 만났을 때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