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3067

팔복(18)- 죽음의 극복 / 정용섭 목사

예수의 부활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가, 아니면 제자들의 특별한 종교 경험에 불과한 것인가? 부활이 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경험된 것일까? 부활의 주님이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요즘은 왜 우리가 제자들과 같은 부활 경험을 하지 못하는가?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할 수는 없다. 한 가지 관점만 짚도록 하자.예수의 부활은 죽음의 극복이다. 죽음은 모든 생명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그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없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아무리 잘했다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며칠 전(7월10일)에도 한국 제1세대 여자 골퍼이자 오늘의 한국 여자 골퍼들이 세계 골프계에 군림할 수 있도록 선구자 역할을 했던 구옥..

팔복(17)- 부활의 빛 / 정용섭 목사

천국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증명의 문제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증명이라는 말도 별로 명확한 게 아니다. 법원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라. 검사는 피의자의 범행사실을 증명하려고 하고, 변호사는 무죄를 증명하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증명들이 허위로 떨어진다. 과학도 모든 걸 명명백백하게 증명해내지 못한다. 성서언어는 증명의 차원이 아니라 고백의 차원이다. 허망한 사실을 고백한다는 말이 아니라 믿을만한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일단 믿을만하게 설명할 책임이 신학에게 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성서 언어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고백이며, 믿음이다.천국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사실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믿음에 근거해서만 그 확실성이 보장된다. 그렇지 않으면 저 말씀은..

팔복(16)- 하나님의 통치 / 정용섭 목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는 그것을 일종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다. 천국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묘사는 한결같이 공간적이다. 멋진 집, 황금 면류관, 친구와 가족, 진수성찬 등이다. 시한부종말론자들인 다미선교회 류의 사람들도 하늘나라를 우주의 한 공간으로 여긴다. 요한계시록에도 새 하늘과 새 땅을 공간적인 어떤 것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신자들이 오해할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메타포이지 사실 언어가 아니다.참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오해되는 경우는 많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성서에 대한 열정이 과도한 교회에서는 더 심하다. 두 가지의 위험성이 있다. 첫째,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는 것이다. 성서 텍스트는 해석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2천 년 전 성서 텍스트를 쓰거나 읽던 사람들과 오늘 우리는 전혀..

팔복(15)- 절대 생명 / 정용섭 목사

종말에 완성될 생명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완전하고 절대적인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답을 찾기도 힘들다. 우리가 지금 상대적인 생명 세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생명을 생각해낼 수가 없다. 기껏 해봐야 배고프지 않고, 병들지 않고, 싸움이 없고, 죽지 않는 생명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면 생명이 완성될까?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배고프지 않으면 배부름도 모른다. 배부름을 모르면 행복도 모른다. 병들지 않으면 건강한 게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죽지 않으면 살아있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상상력을 아무리 발휘해도 절대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이는 곧 하나..

팔복(14) / 정용섭 목사

하늘나라를 기다린다는 말을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배부르게 먹고 존경받는 삶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조금 좋은 뜻으로 지금 여기서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게 최선이지 하늘나라가 오는 걸 기다리는 게 뭐 중요하냐는 주장들이다. 그래서 이런 기다림의 신앙을 무책임한 것으로,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긴다. 과연 그런가?기독교가 말하는 기다림의 영성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막연한 내세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생명이 종말에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의 생명은 완성된 게 아니다. 세상도 완성된 게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우리 자신의 생명과 세상을 보라. 모든 것이 유한하다...

팔복(13) / 정용섭 목사

하늘나라가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말은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뜻일까? 즉 내세 천국을 가리키나? 그러니 지금은 인생이 고달파도 참고 지내라는 말일까?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복음이 ‘민중의 아편’이 되고 만다. 빈부격차의 문제도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 경제정의는 무의미한 구호에 머물고 만다. 이건 오해다.이 문장을 좀더 깊이 이해하려면 하늘나라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하늘(하나님) 나라는 질적으로 새로운 세상이다. 우리는 여기서 상대적인 것에 묶여서 산다. 다른 사람보다 좀더 돈이 많고 좀더 건강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으로 만족해한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체제는 이런 삶의 방식으로 더 강화하고 있다. 기독교인들도 하늘나라를 복지가 최상으로 보장된 세상으로 여긴..

팔복(12) / 정용섭 목사

가난한 자들이 왜 복 있는 자들인가? 본문이 답한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죽어서 천당에 간다는 말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런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삶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것에 자신의 영혼을 걸어두지 않는다. 자신에게 능력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생명을 성취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을 세상의 것에 걸어둔다. 인생이 흘러가면서 이들의 영혼이 어떤 상태로 들어가는지를 보라. 세상의 것에 자기 영혼을 걸어두는 사람은 세상의 것이 잠정적이고 무상하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한다.아마 이런 말을 실감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부자들은 모두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고 여길 것이다. 사회..

팔복(11) / 정용섭 목사

누가복음의 ‘가난한 자’와 마태복음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다르게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들을 가리킨다. 가난은 삶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팔복이 선포되던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고아, 과부, 종들은 가난한 자를 대표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라를 잃고 다른 나라에 망명 온 이들이나 빌붙어 사는 이들도 가난한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삶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노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길도 막혀 있었다. 그들은 세상의 완전한 변혁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도 역시 자기에게 생명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비록 경제적인 가난에서 벗어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가난한 자다.여기서 삶의 능력이 자신에게 없..

팔복(10) / 정용섭 목사

마태복음 기자가 전하는 팔복의 첫 항목은 이렇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여기서 심령은 헬라어 프뉴마다. 프뉴마는 히브리어 루아흐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것은 영, 내적인 생명, 바람, 숨이라는 뜻이다. 종교적인 깊이가 가장 깊었던 민족인 히브리인들과 철학적인 깊이가 가장 깊었던 민족인 헬라인들이 세상을 비슷하게 보았다는 증거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 부분적으로만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대인들의 언어 세계를 공부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부분적인 생각을 관통하는 진리에 열린 태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프뉴마는 낱말풀이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념이다..

팔복(9) / 정용섭 목사

경제 문제의 추상화는 극단적인 내세주의자들에 의해서만 주장되지 않는다. 나름으로 사회의식이 있고, 교회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서도 주장된다. 수년 전에 ‘청부론’ 논쟁이 한국교회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김동호 목사가 청부론의 대표자이시다. 청부론은 말 그대로 기독교인들이 깨끗한 부자로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분은 여기에 덧붙여 ‘고지론’도 주장하셨다. 고지론은 기독교인이 사회의 중요한 자리에 먼저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세상이 바뀐다는 주장이다. 그 중요한 자리가 전투용어인 고지이다. 전투에서 고지를 선점하면 전투에서 유리하다. 고지론과 청부론이 한국의 젊은 지성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린 것 같다.깨끗한 부자가 누군가? 성경에도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는 인물들이 나오긴 한다. 믿음의 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