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3073

손 마른 사람 (1)(막 3: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막 3:1) 1-6절에 기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아직 회당에서 축출당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묘사입니다. 유대교 고위 당국자들과의 충돌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 사건이 일어난 다음부터 노골적으로 예수를 해치울 생각으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작당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본다면, 이 사건이 예수님의 운명에 아주 결정적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들어간 회당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합니다. 어떤 외경에는 이 사람이 왕년에 석수였고, 마비된 손이 오른쪽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즘도 우리는 간혹 산업재해로 인해서 장애를 입고 실직할 수밖에 없..

안식일과 인자 (8)(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앞에서 저는 주일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주일이 사람을 억압하는 종교형식으로 작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만을 위한 종교 행사로 떨어지지도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주일, 사람, 인자 사이에 매우 미묘한 긴장이 있습니다. 영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하지 못하면 이런 요소들이 우리의 신앙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막 2:28절 큐티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주일의 주인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주님이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일을 잘 지킨다는 것은 구원의 현실들이 활짝 드러나는 일에 모든 힘을 쏟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역시 이런 구원의 현실들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내용도 ..

안식일과 인자 (7) (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인간의 감수성이 지배하는 예배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재 하는 예배를 우리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구분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말은 이렇게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신학적 영성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설명해보아야겠지요. 예전(liturgy)과 교회력의 약화는 오늘의 예배가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의 가장 결정적인 근거입니다. 예전과 교회력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난 2천년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표현해온 상징입니다. 오늘의 열린예배는 이런 요소들을 무시되고 현재 청중들의 종교적 감수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로만 나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찬송만 해도 그렇습니다...

안식일과 인자 (6)(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안식일의 주인이 인자라고 한다면 가능한대로 교회 자체나 사람들의 흥미를 줄이고 주님에게 우리의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잘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자는 우리에게 너무 먼 이야기에 불과하고, 그저 우리끼리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훨씬 흥미롭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열린예배”도 역시 안식일의 주인이 인자라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거역하는 예배 행위가 아닐는지요. 물론 모든 경우를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경향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 예배는 기본적으로 정통의 예배가 안고 있는 정숙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정통예배보다 훨씬 심각한 문..

안식일과 인자 (5) (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며칠 동안의 큐티를 세밀하게 읽으신 분들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는 27절 말씀과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28절 말씀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설명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겁니다. 제가 인자에 관한 말씀인 28절을 설명하면서 사람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했으니까요. 그러나 27절과 28절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27절은 종교적 제도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으며, 28절은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론적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회의 제도보다는 인간이 상위이기는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은 늘 따라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추종하는 것은..

안식일과 인자 (4)(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이제야 우리는 “안식일과 인자”라는 주제를 실제로 묵상할 수 있는 자리에 섰습니다.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주일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사람끼리 즐겁게 지내는 것이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주일의 모습이 아닐까요? 브레넌 매닝의 아래와 같은 진술은 바로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럼에도 나는 예수님 얼굴에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고후 3:18)에 관한 강론이나 설교를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현대 설교자들이 이 주제의 설교에 인색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가봇과 한 번도 스친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일..

안식일과 인자 (3)(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어제 큐티에서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 언급하는 신약성서도 물론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이를 대표합니다. 그 이외의 서신에도 그 당시의 부도덕성을 경고하거나, 또는 예수의 십자가가 우리를 죄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그런 문제를 죄 숙명주의, 또는 십자가 결정론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즉 십자가 사건의 실체가 아직 우리에게 완전히 밝혀진 건 아닙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아직 인간이 무엇인지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구원과 십자가의 관계도 역시 여전히 질문의 대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안식일과 인자 (2)(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어제의 큐티에서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실체가 역사 과정을 통해서 탈(脫)은폐되었으며, 그런 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진리(알레테이아)는 그런 성격이 있습니다. 한번 드러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와 더불어 그 실체가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그래야만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도 역시 아직 완전하게 드러난 게 아닙니다. 이런 말이 조금 의아하게 생각되는 분들도 있겠군요. 다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인간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지 못하다가 먼 훗날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별로 믿을만한 사건이 못 되었다가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이제 믿을만한 사건..

안식일과 인자 (1)(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8) 23절부터 시작된 안식일에 관한 담론이 이제 28절에서 그리스도론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유대인들의 묵시사상이 가리키는 메시아 상의 하나입니다. 복음서는 그 인자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전제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본문 28절은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28절을 직접 말씀했을 개연성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마가복음 기자가 창작했다는 말일까요? 이런 대목에서 우리의 성서읽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서기자의 창작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사태의 핵심 안으로 들어가는 게 조금 까다롭습니다. 힘들어도 그런 방식으로 성서를 읽어야겠지요. 그렇지 않..

안식일과 사람 (3)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7) 예수님이 본문에서 안식일을 해체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우리가 이 말씀에서 안식일과 사람을 대립적으로 다루지 말아야 하지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그 명제가 우리의 신앙생활을 규정하는 시금석이라는 사실만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행위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것인가에 관한 대답을 실증적으로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십계명에 근거해서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쳐야 할까요? 이런 강제 규정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성수주일을 강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