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554

행복, 시원(始原)의 세계 현실 / 정병선목사

우리가 현재의 삶의 방식을 행복모드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국가경제규모에 비해 국민행복지수가 낮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보다 훨씬 중요하고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삶과 행복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께서는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웬 행복 타령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행복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시원(始原)의 세계 삶에서 왜 행복을 들먹여야 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원(始原)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삶의 원형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창조의 시원으로 돌아가 볼까요? 성경을 보면 다짜고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1. 우리사회의 두 얼굴

동전에 양면이 있듯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회에도 두 얼굴이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이고 진취적입니다. 예술적 감성과 인간적인 정이 넘칩니다. 의지와 도전정신이 뛰어납니다. 위기와 영경을 돌파하는 능력이 강합니다. 하여,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선진화를 이루어냈습니다. 지난 40년간 눈부신 경제발전을 거듭한 결과 국가경제규모(GDP-Gross Domestic Product) 세계 12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세계 TV 시장의 20%를 점유했고, LG도 3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조선업체들은 세계 선박 수주량의 1~5위를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도 ..

빚진 자의 너스레

나는 빚진 자다. 사위어가는 생명의 불꽃을 지피기 위해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졌다. 병상에서 부른 생명의 노래와 사랑의 찬가는 온전히 사랑의 빚을 진 결과였다. 크고 작은 사랑이 나로 하여금 생명의 노래와 사랑의 찬가를 부르게 했고, 나는 빚진 자라는 ‘빚진 자 의식’을 일깨워주었다. 사실 나는 수술 이전부터 빚진 자였다. 수술을 하기 1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세 식구가 한가하게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들 녀석이 뜬금없이 말했다. 아빠는 엄마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라고. 맞다. 아들놈이 정확하게 말했다. 아내의 헌신적인 돌봄과 사랑의 격려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또 20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식도 정맥류 출혈로 이미 오래 전에 나는..

죽음과 삶 / 정병선목사

죽음, 그것은 나에게 그리 낮선 세계가 아니었다. 간경화가 악화되는 걸 몸으로 느끼고,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을 드나들면서 나는 점차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4-5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드나들 때였는데, 갑자기 현재의 간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갑작스레 죽음을 맞는 것보다는, 남은 생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준비하는 것이 낫겠다 싶은 생각에 의사 선생님께 가볍게 물었다. 지금 이 몸으로 얼마나 살 수 있겠느냐고. 의사 선생님께서도 가볍게 대답했다. 5년은 살겠다고. 정말 가볍게 묻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 기분이 묘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렸고,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리고 두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존재의 이유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간 이식을 결정하고 수술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의문과 싸워야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친데 비해 나는 내가 살기 위해 아들을 잡는, 참으로 비정하고 어처구니없는 애비로서의 연민과 고민을 끌어안고 씨름해야 했다. 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지, 사랑하는 아들의 간을 이식받으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으면 안 됐다. 간이식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이 단순히 ‘생의 의지’이기만 한 것인지? 혹 ‘생명에의 집착’은 아닌지? 현재를 넘어서지 못한 채 눈앞의 삶에 전전긍긍하는 속물근성은 아닌지? 허락되지 않은 생명을 탐하는 것이 아닌지?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환영하고 의연하게 맞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피조물다움에..

몸의 발견 / 정병선목사

수술 이후의 과정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몸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수술 전에도 간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몸의 변화에 민감했었지만 수술 이후의 과정은 또 달랐다. 오직 몸을 돌아보고, 몸의 변화에만 촉수를 집중할 뿐 다른 것은 다 뒷전이었으니까. 몸 외에는 세상의 어떤 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병원에 있는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사망 사고가 있었지만, 그 일조차도 크게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몸 하나가 전부인 특별한 시간을 보내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 바로 몸이다. 몸의 물성(物性)이다. 내가 몸의 물성을 발견하게 된 것은 많은 사례들을 겪고 나서인데, 몸과 사람의 존재 양식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균열을 가한 첫 번째 경험은 수술 직후였다. 수술이 끝난 후..

교회가 교회이기 위한 최고의 조건

다시 영점(零點)에 서서 생각해보자. 교회란 어떤 곳인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하는가? 십자가 걸고 예배드리면 교회인가? 하나님 부르고, 예수 십자가 말하면 교회인가? 성경을 이야기하면 교회인가? 칼빈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며 또 듣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를 지킬 때에 거기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옳다.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를 지키면 주님의 교회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나는 칼빈의 말을 좀 더 풀어서 말해보려 한다. 성례 문제는 빼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려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교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선포하며 가르치고 있다고 예외 ..

'살아있음'과 '삶' / 정병선목사

나는 퇴원 후 최소한의 운동이라도 해야겠기에 집밖에 나가 걷기를 했다. 있는 힘을 다 해야 겨우 한 걸음씩 떼는 걸음이었지만 그래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초등학교로 나가 10여분씩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익은 숲과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6월의 푸르름이 그렇게 싱싱할 수가 없었다. 시끄럽게 떠들며 뛰노는 아이들의 얼굴과 눈망울이 참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씩씩하게 발걸음을 떼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경쾌해 보였다. 그리고 순간 그 모든 것이 생명이라는 진실을 인식했다. 그랬다. 모두가 생명이었다. 펄펄 뛰는 생명이었다. 아니, 생명 아닌 것이 없었다. 하늘, 땅, 들, 산, 길에 있는 것들이 온통 생명이었다. 생명, 생명, 생명이었다. 정말 아름답고 찬란한 생명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하나..

현실과 비현실의 벽이 무너지다 / 정병선목사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술을 기피하는 건 통증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요즘은 환자가 자신의 통증 정도에 따라 주사약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통증클리닉이 발달해서 통증으로 고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도 수술 후 통증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지내는 동안 정말 힘들었던 건 중환자실에서 지내는 것 자체였다. 중환자실은 밤과 낮이 따로 없다. 하루 24시간 내내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야 하기 때문에 중환자실은 항상 대낮처럼 밝다. 거기다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의 바쁜 움직임, 수술이 막 끝난 환자가 들어올 때마다 고조되는 긴장된 분위기, FM 음악 방송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노래와 젊은 진행자들의 시시껄렁한 잡담, 마지막 생명의 끈을 붙잡고 신음하는 환자들의 ..

교회를 보는 눈이 있는가? / 정병선목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삶이든 교육이든 사업이든 국가든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반드시 묻고 확인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를 묻고 아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왜 존재하는지, 교육이란 무엇이며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지, 국가는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지, 장사는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장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고, 교육을 할 수 있고, 장사를 할 수 있고,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그리고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은 무엇인가?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이 매우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