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55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모든 생명은 예외 없이 죽는다. 삶과 죽음은 서로 맞닿아있다. 삶은 마치 죽음을 부르는 유혹인 듯하고, 죽음은 소진한 삶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품 같다. 하지만 삶이 죽음을 아는 것 같지는 않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을 만큼 평생을 배움에 바친 공자는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삶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신앙의 사람 파스칼은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다만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며, 내가 모르는 것은 이 피할 길 없는 죽음 그 자체다.”라고 했다. 우리도 역시 죽음을 모른 채, 또는 죽음을 잊은 채 죽음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다. 그렇다. 죽음은 분명 인생 최고의 현..

인간의 수치요 신앙의 수치인 십자가(막15:1-32)

프랑스의 철학자 라 로슈푸코는 “자기애(自己愛)의 집착만큼 뿌리가 깊고 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자기애의 욕망만큼 격렬한 것은 없고, 이것의 의도만큼 은밀한 것은 없으며, 이것의 행동만큼 교묘한 것은 없다. 그 변신의 탈바꿈의 유연성은 따로 예를 찾아볼 수 없으며, 변신의 자유자재함은 곤충의 탈바꿈보다도 뛰어나고, 그 세련된 기교는 화학작용의 불가사의를 능가한다. 자기애의 밑바닥을 잰다는 것도, 그 심연의 어둠을 꿰뚫어본다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자기애는 그 어둠 속의 가장 날카로운 눈에도 보이지 않게끔 숨어서 누구의 눈에 띄는 일도 없이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니고 있다.”(인간에 대한 잠언집. 563번)고 했다. 그렇다. 인간의 모든 행위 속에는, 비록 그 행동이 선하고 ..

근심에 쌓여 죽을 지경인 예수님(마14:32-42)

흔히 사람의 진면목은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백 번 옳은 말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워낙 깊고 오묘해서 은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특별한 갈등이나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으면 쉽게 자신을 노출하지 않는 탁월한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면면을 파악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여, 사람의 진면목이 노출되는 것은 대부분 위기적 상황을 만날 때이다.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다. 평상시에 예수님이 스스로를 위장하거나 은폐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장 깊이 드러난 때가 바로 위기의 때, 곧 십자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였기 때문이다. 놀라고 괴로워하신 예수님 제자들이 떠날 것을 예고하신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데리고 올리브 산에 올라가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다. 유다는 이미 예수님 곁을 ..

믿음과 기적의 상관관계(막5:21-6:6)

믿음과 기적(막5:21-6:6) 산다는 것은 복되고 아름다운 일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동시에 뜻하지 않은 재난을 피할 수 없고, 원하지 않는 고통과 씨름해야 하는 가시밭길이기도 하다. 삶이란 참으로 냉정해서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굴러가지도 않고 원하는 일만 일어나지도 않는다. 어쩌면 원치 않는 일들에 붙들려 끌려가는 것이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삶은 거칠게 사람을 다루는 것 같다. 삶을 사는 것은 정녕 사람인데, 사람이 삶을 휘두르기보다는 오히려 삶이 사람을 휘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믿음을 가진 자들은 삶의 냉정함에 휘둘릴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개입과 기적 같은 해결을 기대하며 믿음에 매달린다..

은혜와 은혜의 모양을 띤 영적 이기주의

사람은 타고난 이기주의자입니다. 매사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욕망이 채워져야만 만족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다들 사회정의를 말하고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논하다가도 구조조정으로 인해 본인이 해고될 처지가 되면 결사적으로 반대합니다. 자기 이익과 반대되는 사회정의는 결코 사회정의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입으로는 지역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정치인도 뒤로는 교묘하게 지역 연고주의를 이용하고 자극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혀 나갑니다. 무엇이든 내 입에 달면 좋은 것이고 내 입에 쓰면 나쁜 것이라고 몰아 부칩니다. 사람은 진실로 타고난 이기주의자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영적인 것은 무조건 신앙적인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인간이라고 하는..

건강한 신앙 체험과 그릇된 신앙 체험 구별법

기독교 신앙은 내적 확신이나 이론적 논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체험적 실재입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삶의 전 지평이 새로워지고, 십자가에서 폭발한 그분의 사랑이 내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오는 체험과 통절한 죄인의식을 통해서만 신앙의 세계는 열립니다. 그런데 신앙체험이라는 것이 하도 신비해서 인간적인 종교체험과 구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체험과 그릇된 신앙체험은 일면 비슷해 보입니다. 심지어 그릇된 신앙체험이 진정한 신앙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고 극적이며 사로잡는 힘이 있기 때문에 영적인 깊이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릇된 신앙체험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세심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훌륭한 기독교 저술가인 '존 포웰'은 진정한 신앙체험과 그릇된..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4) / 독립을 넘어 상호의존적인 사람

4. 독립을 넘어 상호의존적인 사람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유명한 책에서 사람의 성장 과정을 3단계로 구분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전적으로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의존적인 단계의 삶을 살아간다. 그 후 사춘기가 되면 독립적인 단계로 발전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성장을 멈춘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독립적인 단계까지도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나이를 먹었어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를 의지한다든지, 책임 있게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사람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의존적 단계에서 독립적 단계로 성장해야 하는데 우리의 사회문화적 환경이 점차 부모의 돌봄을 받는 기간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인지라 독립하지 ..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3) / 교회를 넘어 하나님나라에 사로잡힌 사람

3. 교회를 넘어 하나님나라에 사로잡힌 사람 한국교회의 새로운 미래를 활짝 열어가기 위해서는 교회가 강조하는 영적 세계에 함몰되지 않고 일상에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사는 걸 중시하는 자가 필요하다. 신앙은 신앙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신앙은 하나님을 위해 주어진 것도 아니다. 신앙은 오직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일 뿐 다른 무엇도 아니다. 신앙은 존재를 포함한 실존의 변화를 위해 주어진 은총이요 도구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을 가진 자는 생활의 현장이 달라져야 한다. 진정한 신앙의 승부는 교회 안에서 결정되는 게 아니고 날마다 반복되는 작은 일상에서, 교회 밖에서 결정 나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회는 끊임없이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회 밖으로 성도들을 나가도록 독려해야 ..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2) / 옳고도 아름다운 사람

2. 옳고도 아름다운 사람 한국교회의 새로운 미래를 활짝 열어가기 위해서는 옳고도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신앙에만 투철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미가 풍성한 사람이 돼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기독교인 만들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 예수를 따름으로 진정한 인간의 길을 가라고 구원하신 것이다. 그렇다. 구원이란 길게 말할 게 없다. 그냥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 단지 인간이 되는 것이면 충분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그 인간됨을 회복하는 것, 온 세계를 만드신 분과 소통하고, 또 그분이 만드신 온 세계와 소통하며 사는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다움은 반드시 사람다움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1) / 깨어있는 열정의 사람

나는 지금까지 한국교회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세 가지 범주의 사람들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왜 그런 사람들이 양산된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째, 자기 이해의 과정 없이 무조건 믿고 따르는 의존적인 그리스도인, 지식이 없는 열성으로만 뭉쳐있는 사람들로는 교회 왕국을 세울 수는 있겠으나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는 어렵다는 것. 둘째, 매사에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사람들로는 어떤 일도 창조적으로 해낼 수 없다는 것. 셋째, 개인적인 신앙에 안주하는 사람들 역시 교회의 외형을 크게 하는 데는 일조할 수 있으나 교회의 체질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해가 되기 십상이라는 걸 말했다. 나는 정말 아픈 마음으로, 내 수치를 폭로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