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4) / 독립을 넘어 상호의존적인 사람

새벽지기1 2023. 5. 17. 06:02

4. 독립을 넘어 상호의존적인 사람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유명한 책에서 사람의 성장 과정을 3단계로 구분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전적으로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의존적인 단계의 삶을 살아간다. 그 후 사춘기가 되면 독립적인 단계로 발전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성장을 멈춘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독립적인 단계까지도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나이를 먹었어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를 의지한다든지, 책임 있게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사람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의존적 단계에서 독립적 단계로 성장해야 하는데 우리의 사회문화적 환경이 점차 부모의 돌봄을 받는 기간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인지라 독립하지 못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능력 있는 부모 둔 것을 은근히 자랑하며 부모의 지원 받는 것을 특권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동물들도 때가 되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새끼들을 독립시키는데 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독립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수치 중에 수치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기 몫을 살아내려면 독립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독립적 단계만으로는 부족하다. 상호의존적 단계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인생이란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나 홀로는 존재할 수도 없고, 한 순간조차도 살아갈 수 없다. 공기가 없이 어떻게 호흡할 수 있으며, 농부가 없이 어떻게 아침을 먹으며, 옷 만드는 사람이 없이 어떻게 입으며, 건축가가 없이 어떻게 집안에서 편히 잠을 잘 수 있겠는가? 부모 없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는가? 너 없이 나는 설 수 없다. 너 없이 나는 존재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이 생명의 진실이며 삶의 진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독립만으로는 부족하다. 독립을 넘어 너의 필요와 도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상호의존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단계로 성장해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유아독존의 폐쇄된 나라가 아니다. 너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상호의존적인 세계가 하나님나라의 본질이다.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노는 세계,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가락을 넣어도 물지 않는 세계, 모든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소통의 세계, 피차 돌보고 돌봄을 받는 사랑의 세계, 상호의존적인 세계가 바로 하나님나라다. 하나님은 한 생명체,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완벽하게 주지 않았다. 다른 생명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셨다. 나무는 공기와 비가 있어야 광합성 작용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은 나무가 광합성 작용을 하고 내뿜는 산소를 마셔야 살아갈 수 있도록 멋지게 고안되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200억이나 되는 세포도 세포마다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만일 정보가 막히면 세포는 약화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고, 암세포로 변질되어 몸을 망가뜨린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산다. 유아독존의 태도는 하나님나라의 삶이 아닐 뿐만 아니라 생명의 본질에도 어긋난다. 그런데 비판적인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이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치 자기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재단한다. 특히 기독교인이 그렇다. 기독교인의 진리 독과점주의는 양보할 수 없는 진리의 절대성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독과점주의는 매우 위험한 태도임에 틀림없다. 왜냐? 진리는 고유한 절대성에도 불구하고 닫힌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의 절대성은 닫혀있는 절대가 아니라 무한히 열려있는 절대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과거의 역사 속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관통하며 오늘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성경이 열린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기독교는 그동안 성경의 열린 진리를 가르쳐오면서도 성경과는 다르게 닫힌 절대성에 사로잡혀 있을까? 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세상을 품어내고 대화하지 못할까? 성경은 모든 사람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 이건 뭘 말하는가? 완전하게 진리 인식을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없다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을 내 잣대위에 올려놓고 내 맘대로 평가하고 흔들어도 좋을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성경은 하나님이 각기 다양한 은사를 주셨다고 말한다. 이 말은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없어도 좋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없어도 좋을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런 말씀을 달달 외우면서도 그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지는 않는다. 아니, 듣지를 못한다. 그래서 상호의존적인 단계로 성장하지 못하고 끝없이 의존적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일상에까지 스며들어온 나머지 믿음이 자랄수록 더 의존적이 되어간다. 어쩌면 교회가 성도들의 의존적인 태도를 더 강화시켜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교회 안에 묶어두기 편하니까. 독립적인 단계나 상호의존적인 단계로 자라게 되면 목회자가 설 땅이 점점 좁아질 테니까.


  하지만 솔직히 생각해보자. 목회자가 설 땅이 좁아지는 게 그렇게 큰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의 리더십이 약해지면 교회가 무너질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사실은 목회자가 설 땅이 지금보다 좁아져야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 우리의 진짜 싸움은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지 목회자가 설 땅이 넓어지느냐 좁아지느냐에 있지 않다.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것, 하나님나라를 위해 교회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는 것, 그것이 목회자와 그리스도인의 싸움이요 책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의존적인 단계나 독립적인 단계를 넘어 상호의존적인 단계로 성숙해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상호의존적인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증언하고 보여줄 수 있게 될 것이다.

5.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주님의 신부인 교회, 세상의 소망인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두서없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글을 마치며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열심히 교회 나가고 충성하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의 최선은 아니다. 지식이 없는 열심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의도하신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알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나라를 닮아가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쉬지 않고 길을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런 문제는 목사나 고민할 문제라며 외면하는 것은 교회를 수렁에 빠뜨리는 일이며 교회다운 모습도 아니다. 목사와 성도들이 함께 부둥켜안고 교회의 문제를 아파하며,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손을 맞잡고 애쓰는 것이 진정 교회를 사랑하는 길이요 충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제넘은 이야기 한 마디만 더 하겠다. 잠잠히 교회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교회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설교를 듣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리스도인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목자 없이 유리방황하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심히 아파했던 예수님의 마음이 밀려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정말이지 한국교회를 붙잡고 한바탕 꺼억 울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왜 교회가 이러냐고? 왜 설교가 저러냐고? 하지만 할 수가 없다. 거대한 아우성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들으려고 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이미 세상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교회의 힘찬 외침 앞에서 성도들은 언제든지 굴종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기를 원하고, 눈뜨게 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포기한 채 눈을 감으려 드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목회자에게 엎드려 손을 벌리는 데만 익숙하니까.


  그렇다. 교회마다 독립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한다. 한국 교회 안에서 깨어있는 열정의 사람, 옳고도 아름다운 사람, 교회를 넘어 하나님나라에 사로잡힌 사람, 독립을 넘어 상호의존적인 사람, 닫힌 진리를 넘어 열린 진리의 사람이 많이 배출되기를. 그런 사람들로 교회가 출렁이기를.  

  월간 "복음과상황"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