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519

몸의 발견 / 정병선목사

수술 이후의 과정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몸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수술 전에도 간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몸의 변화에 민감했었지만 수술 이후의 과정은 또 달랐다. 오직 몸을 돌아보고, 몸의 변화에만 촉수를 집중할 뿐 다른 것은 다 뒷전이었으니까. 몸 외에는 세상의 어떤 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병원에 있는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사망 사고가 있었지만, 그 일조차도 크게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몸 하나가 전부인 특별한 시간을 보내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 바로 몸이다. 몸의 물성(物性)이다. 내가 몸의 물성을 발견하게 된 것은 많은 사례들을 겪고 나서인데, 몸과 사람의 존재 양식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균열을 가한 첫 번째 경험은 수술 직후였다. 수술이 끝난 후..

교회가 교회이기 위한 최고의 조건

다시 영점(零點)에 서서 생각해보자. 교회란 어떤 곳인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하는가? 십자가 걸고 예배드리면 교회인가? 하나님 부르고, 예수 십자가 말하면 교회인가? 성경을 이야기하면 교회인가? 칼빈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며 또 듣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를 지킬 때에 거기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옳다.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를 지키면 주님의 교회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나는 칼빈의 말을 좀 더 풀어서 말해보려 한다. 성례 문제는 빼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려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교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선포하며 가르치고 있다고 예외 ..

'살아있음'과 '삶' / 정병선목사

나는 퇴원 후 최소한의 운동이라도 해야겠기에 집밖에 나가 걷기를 했다. 있는 힘을 다 해야 겨우 한 걸음씩 떼는 걸음이었지만 그래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초등학교로 나가 10여분씩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익은 숲과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6월의 푸르름이 그렇게 싱싱할 수가 없었다. 시끄럽게 떠들며 뛰노는 아이들의 얼굴과 눈망울이 참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씩씩하게 발걸음을 떼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경쾌해 보였다. 그리고 순간 그 모든 것이 생명이라는 진실을 인식했다. 그랬다. 모두가 생명이었다. 펄펄 뛰는 생명이었다. 아니, 생명 아닌 것이 없었다. 하늘, 땅, 들, 산, 길에 있는 것들이 온통 생명이었다. 생명, 생명, 생명이었다. 정말 아름답고 찬란한 생명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하나..

현실과 비현실의 벽이 무너지다 / 정병선목사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술을 기피하는 건 통증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요즘은 환자가 자신의 통증 정도에 따라 주사약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통증클리닉이 발달해서 통증으로 고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도 수술 후 통증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지내는 동안 정말 힘들었던 건 중환자실에서 지내는 것 자체였다. 중환자실은 밤과 낮이 따로 없다. 하루 24시간 내내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야 하기 때문에 중환자실은 항상 대낮처럼 밝다. 거기다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의 바쁜 움직임, 수술이 막 끝난 환자가 들어올 때마다 고조되는 긴장된 분위기, FM 음악 방송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노래와 젊은 진행자들의 시시껄렁한 잡담, 마지막 생명의 끈을 붙잡고 신음하는 환자들의 ..

교회를 보는 눈이 있는가? / 정병선목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삶이든 교육이든 사업이든 국가든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반드시 묻고 확인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를 묻고 아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왜 존재하는지, 교육이란 무엇이며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지, 국가는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지, 장사는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장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고, 교육을 할 수 있고, 장사를 할 수 있고,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그리고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은 무엇인가?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이 매우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

사랑의 맨 얼굴 / 정병선목사

아들은 수술 다음 날부터 수술 부위에 피가 나기 시작하더니 장(腸)이 열리는 과정에서 상상하지 못한 일로 극심한 고통을 당했다. 죽음 같은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아들의 상황을 아내가 간단하게 메모한 것을 토대로 추려 옮긴다(괄호 안은 내가 설명을 덧붙임). 수술 다음 날인 13일, 허리 통증으로 진통제 세 차례 투여. 저녁 때 상처 부위 피남. 혈장 4개 수혈, 알부민 투여. 14일, 아침 7시 20분에 주치의가 상처 소독하는데 수술 부위를 처음 보고 칼로 가른 상처가 너무 깊고 넓어 눈물이 가슴에서 펑펑 쏟아짐(명치끝에서 아래로 7센티미터, 그 좌우로 정확하게 30센티미터를 갈랐다). 15일, 통증 계속 됨. 상처에서 두 번째 출혈. 저녁 늦게 진통제 투여하여 잠을 청함. 16일, 아침 6시30분..

교회여! 제발 교회되기에 진력하라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자 대안으로 기획된 하나님의 도구다. 아니 세상이 어떠하기에? 잘 알다시피 세상은 죽음이라는 절대한계 안에 갇혀 있다.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죄에 감염되어 있다. 헛된 우상을 따르는 어리석음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세상은 쉬지 않고 발전해왔다. 인간은 그동안 뛰어난 통찰력과 죽음을 불사르는 열정으로 삶을 위협하는 온갖 난제와 싸워왔다. 역사가 토인비의 말대로 인간의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였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기적 같은 현실을 몸으로 경험하며 살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꿈꾸지 못했던 찬란한 기술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빠른지 보통 사람들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이뿐 아니다. 개인의 권리는 하늘을 찌르고, 넘치..

환희 / 정병선목사

드디어 5월 12일 수술하는 날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새벽 6시다. 아들은 잠에서 채 깨어나지 않았는지 게슴츠레한 표정이다. 7시면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다. 멀쩡한 몸을 찢고 자르기 위해. 심란했다. 뭘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하고 있는데, 멀리서 친구 목사님 부부와 향상교회 목사님, 사모님, 전도사님, 가정교회 목자와 목녀, 그리고 큰형님 부부가 달려와 병실이 북적였다.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온 분들이 고마웠다. 잠에서 덜 깨어난 아들은 얼굴을 씻고 수술복으로 갈아입더니 웃음기를 보였다. 하지만 아들의 얼굴에선 긴장이 묻어났다. 얼굴 근육이 약간 굳어있었다. 사실 아들은 키 171센티에 몸무게 57키로가 고작인 녀석이다. 어려서부터 통통해 본 적이 없는 왜소한 체구에다가 오목 가슴이 깊어 ..

‘함께 있음'과 ‘함께 없음’의 차이

수술을 이틀 앞두고 아들과 나는 나란히 입원을 했다. 언제나처럼 값이 비싼 2인실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2인실에 입원했다. 병실에 들어가 보니 아내와 함께 우리 가족 3명이 전부였다. 느낌이 좀 묘했다.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병원에 온 게 아니라 꼭 콘도로 가족 여행을 온 것 같다.” 세 사람은 서로 웃으며 묘한 느낌을 공유했다. 주일 오후여서인지 병원은 한가했다. 우리 가족도 큰 수술을 앞둔 가족답지 않게 편안하게 담소하며 여유롭게 지냈다. 오랜 만에 가족 전체가 집을 떠나 여유를 만끽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또 친구 목사와 예전에 목회했던 교회 성도들이 담임 목사님과 함께 방문해 반가운 얼굴들을 보는 기쁨도 함께 누리면서. 입원 둘째 날, 그러니까 수술 하루 전이다. 수술을 앞두고..

수술하게 된 것을 기뻐하는 아들

암 전이 검사를 한 결과 다행히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식 수술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아들의 검진이었다. 아들은 근무하는 공익기관에 휴가를 내고 4월 6일 하루 동안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자기 간을 떼어내는 모험을 하기 위해 실시하는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그 날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두려워하거나 망설이는 기색 없이 즐겁게 검사를 받았다. 검사 후에는 ‘결과가 잘 나와야 할 텐데’ 라고 진심으로 염려하며 결과가 나오는 4월 10일을 기다렸다. 나는 그런 아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을 지켜주어야 할 애비가 무거운 짐만 지워주는 것 같아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두 가지 묘한 감정이 마음의 저류에 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