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554

고통과 행복 / 정병선목사

사람은 누구나 고통은 최소화하고 즐거움은 최대화하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그렇게 살 수 없다 해도 저 세상에서만큼은 괴로움과 슬픔이 없는 완전한 삶을 꿈꿉니다. 실제로도 인류는 그동안 과학, 의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종교, 기술, 복지 등 다양한 방법들을 총동원해가며 고통 없는 삶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고통 없는 삶을 인류의 이상처럼 생각하며 고통과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싸워왔습니다. 하여, 오늘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성공을 일구어냈습니다. 적어도 의학적으로는 신체적인 고통을 몰아내는데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아무리 어렵고 큰 수술이라도 큰 고통 없이 수술하고 있고, 수술 이후에도 통증클리닉 덕분에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는 일이 적어졌습니다. 정..

바울이 본 예수의 세계(롬5:1-5) / 정병선목사

우리는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믿음의 세계에 발을 딛고 살고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지탱해 준 한민족의 세계에서 빠져 나와 예수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모여서 예배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안에서 어떤 세계를 보셨습니까? 우리의 뿌리였던 한민족의 세계에서, 오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편적인 삶의 세계에서 예수의 세계로 들어와 보니 뭐가 다르던가요? 무엇이 다르고, 얼마나 다르던가요?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바울은 유대의 세계에서 예수의 세계로 전환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안에서 뭘 발견했을까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기도대로 이루어지는 꿈같은 세상 / 정병선목사

살다보면 난데없이 엉뚱한 상상이나 질문에 붙잡힐 때가 있다. 오늘 점심을 먹고 난 후에도 그랬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때 이른 수박 맛을 음미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생각지 않은 질문이 찾아왔다. ‘만일 우리 기도가 모두 응답받는다면 어떻게 되지?’ 이 질문이 뇌와 접속하자말자 뇌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 바쁘게 작동하더니,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 스냅 사진처럼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현실은 놀랍게도 너무 끔찍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현실이 왜 끔찍하냐고 묻고 싶을지 모르겠다.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것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간절한 소망이 아니냐고 항변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급함을 누르고 잠..

죽음과 삶의 역설 / 정병선목사

앞에서 죽음 현상에 몰두하는 삶의 어리석음과 모순을 이야기했습니다. 매우 매력적이고 도덕적인 ‘고지론’이나 ‘목적이 이끄는 삶’의 교훈까지도 사실은 삶을 소외시키고 죽음 현상으로 내모는 또 하나의 덫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돌이켜 삶을 통째로 보고 삶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면, 삶의 작은 일부인 성취가 아니라 삶 자체에 충실하게 된다면 삶은 절로 행복의 노래, 감사의 노래가 되어 창조주와 구원의 주님을 찬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옳습니다. 진리와 자유의 영이신 성령의 검으로 견고한 진이 되어버린 거짓 상식을 폭로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비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 현상에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비밀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던..

죽음을 사는 삶의 모순 / 정병선목사

지금도 지울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 초원의 작은 생명체들이 벌이는 평생과도 같은 하루를 담은 영상입니다. 멀리서 볼 때는 별일 없어 보이는 땅과 숲과 연못 속에 사실은 우주보다 더 크고 기기묘묘한 곤충들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놀랍도록 정직하고 아름답게 담아낸 걸작입니다. 대충 대여섯 번은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볼 때마다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창조의 영광과 신비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온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에서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의 나비가 나오는 것을 볼 때는 숨이 멎을 정도였습니다. 모든 존재는 정말 제각각 완전했습니다. ‘영광’ 그 자체였습니다.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생명 앞에선 언어가 사..

만백성은 찬양하라?(시편67) / 정병선목사

오늘 시는 매우 짧고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1-2절을 보면 은혜, 복, 주님의 뜻, 구원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성경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단어들입니다. 교회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단어들입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새로운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진부한 말들입니다. 하지만 이 시를 쓴 시인은 지금 상투적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인은 매우 진지하게, 단어 하나하나 속에 풍부한 신앙적 진실을 담아서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복을 내려달라고,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은혜, 복, 환한 얼굴 빛, 다 같은 맥락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은혜’를 ‘우리를 어여삐 보아 달라’는 말로 풀어서 번역했는데 ..

행복의 무덤 / 정병선목사

사람은 홀로 살 수 없습니다. 서로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살다보면 치명적인 일이 발생합니다. 바로 비교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답니다. 세상의 욕심을 버리게 해달라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마귀란 놈이 나타나서는 속삭이더랍니다. ‘지금 기도를 중단하고 내려가면 네 아들과 딸을 하버드 대학에 보내줄게. 그리고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도 가질 수 있게 해 줄게.’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세상 욕심을 버리기 위해 기도하는 마당에 그깟 유혹에 넘어갈 수는 없었겠지요. 더욱 열심히 기도에 매진하고 있는데 또 다시 속삭이더랍니다. ‘너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너한테 준다는 것 말이야, 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줘도 되지?’ 그러자 그 사람은 ..

생명에 붙들린 사람들(행5:27-32) / 정병선목사

이천년 전의 예루살렘은 두 세력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유대교가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나사렛 촌놈 젊은 예수를 체포해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주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할 만큼 유대교 지도자들의 권세는 대단했습니다. 종교적으로뿐 아니라 사법적인 영향력도 행사하는 예루살렘의 실세였습니다. 21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의 동료들이 공회와 이스라엘 원로들을 다 모았다고 한 것을 보면 예루살렘은 제사장이 지배하는 종교적인 사회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도 두 세력이 간여했습니다. 예수의 처형을 집행한 것은 로마의 정치 세력이었지만,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라는 혐의로 단죄하고 죽음으로 내 몬 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사..

신앙과 행복 / 정병선목사

객관적인 복음을 선포하는데 주력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이다(살전5:16-18). 나는 바울의 이 권면을 들을 때마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한단 말인가?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요구 아닌가? 꿈같은 이야기 아닌가?’하는 강한 의문을 갖곤 했다. 사람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비현실적인 말로만 들렸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바울의 권면이 비현실적인 이상이거나 희망사항이 아니라 실제적인 권면일 수 있겠다고. 병마의 고통과 악이 들끓고 배고픔과 전쟁의 포화가 그치지 않는 이 땅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또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것이..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막14:32-42) / 정병선목사

옆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좀 이상하지요? 평상시에 하던 대로 행동하면 익숙한데 갑자기 다르게 행동하면 어색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합니다. ‘뭘 잘못 먹었나?’하면서 위아래를 훑어보게 됩니다. 만일 정용섭 목사님이 조용기 목사님처럼 설교한다고 해보세요. 여러분 모두 눈이 휘둥그레질 겁니다. 아니, 목사님이 지난 주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왜 갑자기 저러시지? 그러면서 별별 상상을 다 하게 될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은 평상시의 예수님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은 언제나 차분하고 평안했습니다. 광풍이 불어 금방이라도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위기일발의 때에도 예수님은 배 안에서 깊은 잠을 잤고, 자기를 죽이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