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522

부와 가난의 이분법을 넘어서 / 정병선목사

우리는 쉽게 부의 평등을 꿈꿉니다. 하지만 부의 평등이란 실현 불가능한 망상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정한 땅 분배를 명령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부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희년이라는 제도를 통해 다시금 부의 공정함을 회복시키는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희년제도를 이해할 때 ‘부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라고 주신 말씀으로만 읽는 것은 절반만 읽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희년제도는 ‘부의 평등’을 실현하라는 말씀임과 동시에 ‘부의 불균형’이라는 현실을 전제로 한 제도였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희년제도를 통해 ‘부의 불균형’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부의 균형’을 회복할 수 없다는 현실적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글을 읽는 행복 / 정병선목사

카롤린 봉그랑은 키에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를 읽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 책 덕분에 내 삶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갑자기 삼라만상이 저마다의 의미를 띠었고, 나는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잠들었다가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이런 경험은 봉그랑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난 후 성경을 읽을 때면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나가고, 세상과 삶을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리는 기쁨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또 좋은 책을 읽을 때보다 더 유익하고 더 행복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책을 읽는 게 좋았던지 밥을 먹을 때도, 버스를 기다릴 때도, 화장실에서도, 심..

부와 가난에 대한 새로운 착상 / 정병선목사

삶의 행복과 관련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부와 가난의 문제입니다. 가난은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파괴하는 매우 커다란 재앙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사회 속에서 열외에 서야 하고, 어디를 가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습니다. 가난한 자는 병들고, 외롭고, 팔려 다니고, 미움을 받습니다. 이웃과 동기들조차도 싫어합니다(잠14:20, 19:7). 더욱이 가난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가난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인식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팎에 매우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가난한 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이 확보되지 않으면 행복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절대 가난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건 우물에서..

약함을 통해 오는 행복 / 정병선목사

행복은 외부적 조건이 완벽하다고 해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깨달음에서 옵니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 현실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수 있을 때 행복은 살며시 문을 엽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볼 때, 눈앞의 사물을 스치듯 보지 않고 깊이 응시할 때, 매순간이 새로운 선물임을 알 때, 행복은 불현듯 모습을 드러냅니다. 내가 행복에 눈을 뜬 것도 아픔을 통해서였습니다. 건강할 때 보지 못했던 행복을 건강을 잃고 나서야 보았습니다. 간경화로 인해 식도 정맥이 터지면 속이 뒤틀리는 고통과 매스꺼움에 순간도 견디기 힘듭니다. 급히 응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달려가면 제일 먼저 고무호스를 위장에 넣어 위 청소를 하고, 흐르는 피를 멎게 하는..

행복의 味學(2)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이 그치지 않았던 혼돈과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온갖 악덕과 권모술수가 판치고, 오늘의 권력자가 언제 역적몰이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난세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공자는 힘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인(仁)과 도덕(道德)에 기초한 덕치를 주장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55세부터 68세까지 세상을 주유했습니다. “만약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1년 안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보겠다. 나아가 3년 뒤에는 훌륭한 업적을 남길 것이다.”며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공자의 정치적 이상을 이해하고 함께 실현해나갈 군주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꿈을 접고 69세에 실의에 찬 귀향을 해야 했습니다. 공자는 그때의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불우..

행복의 味學(1)

행복의 味學(1) 조선시대 중기 최고의 독서가였던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에는 이런 글이 나옵니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오래된 옥(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이덕무는 한 사람의 지기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한 소중한 일인가를 최고의 아포리즘..

행복한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생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도 생명입니다.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들꽃, 강물을 거슬러 힘차게 몸을 놀리는 송사리, 꽃길 여행에 분주한 꿀벌과 나비, 중력을 비웃듯 허공을 가볍게 가르는 종달새, 수천수만 마리가 휘몰아치듯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 철새들, 뜨거운 백사장에서 부화되어 나오자말자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거북이, 육중한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는 고래, 엄마와 볼을 비비며 까르르 웃는 아기, 엄마 닭을 졸졸 따라다니는 노란 병아리, 이 모두가 아름다운 건 그 속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삶이고, 삶은 살림이며, 살림은 또다시 생명을 낳습니다. 생명은 살림입니다. 그런 고로 내 삶을 아름답고 온전하게 가꾸는 것도 생명, 네 삶을 아름답고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2)

위대한 계시인 십자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두 가지 진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나는 인간이 사악하다는 진실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이 그런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진실이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인간의 부패함과 패역함을 고발하고 있다. 인간은 죄인이라고 단언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했고(렘17:9-10), 바울은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시기∙살의∙사기∙난폭∙비방∙거만∙우매∙무정이 가득하다고 했다(롬1:28-31). 예수님은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했다(막7:16).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셔야 했고(창6:5-6), 물로 심판하지 않..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모든 생명은 예외 없이 죽는다. 삶과 죽음은 서로 맞닿아있다. 삶은 마치 죽음을 부르는 유혹인 듯하고, 죽음은 소진한 삶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품 같다. 하지만 삶이 죽음을 아는 것 같지는 않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을 만큼 평생을 배움에 바친 공자는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삶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신앙의 사람 파스칼은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다만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며, 내가 모르는 것은 이 피할 길 없는 죽음 그 자체다.”라고 했다. 우리도 역시 죽음을 모른 채, 또는 죽음을 잊은 채 죽음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다. 그렇다. 죽음은 분명 인생 최고의 현..

인간의 수치요 신앙의 수치인 십자가(막15:1-32)

프랑스의 철학자 라 로슈푸코는 “자기애(自己愛)의 집착만큼 뿌리가 깊고 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자기애의 욕망만큼 격렬한 것은 없고, 이것의 의도만큼 은밀한 것은 없으며, 이것의 행동만큼 교묘한 것은 없다. 그 변신의 탈바꿈의 유연성은 따로 예를 찾아볼 수 없으며, 변신의 자유자재함은 곤충의 탈바꿈보다도 뛰어나고, 그 세련된 기교는 화학작용의 불가사의를 능가한다. 자기애의 밑바닥을 잰다는 것도, 그 심연의 어둠을 꿰뚫어본다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자기애는 그 어둠 속의 가장 날카로운 눈에도 보이지 않게끔 숨어서 누구의 눈에 띄는 일도 없이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니고 있다.”(인간에 대한 잠언집. 563번)고 했다. 그렇다. 인간의 모든 행위 속에는, 비록 그 행동이 선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