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519

만백성은 찬양하라?(시편67) / 정병선목사

오늘 시는 매우 짧고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1-2절을 보면 은혜, 복, 주님의 뜻, 구원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성경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단어들입니다. 교회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단어들입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새로운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진부한 말들입니다. 하지만 이 시를 쓴 시인은 지금 상투적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인은 매우 진지하게, 단어 하나하나 속에 풍부한 신앙적 진실을 담아서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복을 내려달라고,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은혜, 복, 환한 얼굴 빛, 다 같은 맥락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은혜’를 ‘우리를 어여삐 보아 달라’는 말로 풀어서 번역했는데 ..

행복의 무덤 / 정병선목사

사람은 홀로 살 수 없습니다. 서로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살다보면 치명적인 일이 발생합니다. 바로 비교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답니다. 세상의 욕심을 버리게 해달라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마귀란 놈이 나타나서는 속삭이더랍니다. ‘지금 기도를 중단하고 내려가면 네 아들과 딸을 하버드 대학에 보내줄게. 그리고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도 가질 수 있게 해 줄게.’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세상 욕심을 버리기 위해 기도하는 마당에 그깟 유혹에 넘어갈 수는 없었겠지요. 더욱 열심히 기도에 매진하고 있는데 또 다시 속삭이더랍니다. ‘너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너한테 준다는 것 말이야, 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줘도 되지?’ 그러자 그 사람은 ..

생명에 붙들린 사람들(행5:27-32) / 정병선목사

이천년 전의 예루살렘은 두 세력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유대교가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나사렛 촌놈 젊은 예수를 체포해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주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할 만큼 유대교 지도자들의 권세는 대단했습니다. 종교적으로뿐 아니라 사법적인 영향력도 행사하는 예루살렘의 실세였습니다. 21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의 동료들이 공회와 이스라엘 원로들을 다 모았다고 한 것을 보면 예루살렘은 제사장이 지배하는 종교적인 사회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도 두 세력이 간여했습니다. 예수의 처형을 집행한 것은 로마의 정치 세력이었지만,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라는 혐의로 단죄하고 죽음으로 내 몬 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사..

신앙과 행복 / 정병선목사

객관적인 복음을 선포하는데 주력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이다(살전5:16-18). 나는 바울의 이 권면을 들을 때마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한단 말인가?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요구 아닌가? 꿈같은 이야기 아닌가?’하는 강한 의문을 갖곤 했다. 사람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비현실적인 말로만 들렸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바울의 권면이 비현실적인 이상이거나 희망사항이 아니라 실제적인 권면일 수 있겠다고. 병마의 고통과 악이 들끓고 배고픔과 전쟁의 포화가 그치지 않는 이 땅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또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것이..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막14:32-42) / 정병선목사

옆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좀 이상하지요? 평상시에 하던 대로 행동하면 익숙한데 갑자기 다르게 행동하면 어색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합니다. ‘뭘 잘못 먹었나?’하면서 위아래를 훑어보게 됩니다. 만일 정용섭 목사님이 조용기 목사님처럼 설교한다고 해보세요. 여러분 모두 눈이 휘둥그레질 겁니다. 아니, 목사님이 지난 주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왜 갑자기 저러시지? 그러면서 별별 상상을 다 하게 될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은 평상시의 예수님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은 언제나 차분하고 평안했습니다. 광풍이 불어 금방이라도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위기일발의 때에도 예수님은 배 안에서 깊은 잠을 잤고, 자기를 죽이려고 ..

자유와 행복(3)

사람은 과연 자유할 수 있을까?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가 정말 가능할까? 아니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자유할 수 없다. 자기 홀로 외딴 섬에서 살지 않는 한 완전한 자유란 불가능하다. 사실 한 사람만 옆에 있어도 불편한 게 한 둘이 아니지 않은가. 애완용 개만 있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가정과 사회에서의 삶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 자유만으로는 어떤 가정도, 어떤 사회도, 어떤 공동체도 존립할 수 없다. 함께 산다는 것은 자유의 제한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자유와 자유의지 자유와 자유의지는 구별되어야 한다. 자유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사태 진술이라면, 자유의지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뜻한다. 한 걸..

자유와 행복(2) / 정병선목사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광대하다. 하나님은 붙박인 세상이 아니라 변화의 리듬이 있는 동적인 세계, 생육하며 번성하는 생명의 세계, 다양성 속에 일치가 있는 통일의 세계, 다름 속에 같음이 있고 같음 속에 다름이 있는 오묘한 질서의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런데 한 가지 파격이 있었다. 일반적인 창조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예외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사건이었다. 자유세계의 출현을 위해 자유는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이다. 하나님은 ‘나는 곧 나’(출3:14)이신 분이다. 자유하신 분이다. 그분의 모든 말씀은 자유로운 창조의 말씀이요 해방의 말씀이며, 그분의 영은 자유의 영이다. 예수님은 자유의 인간이고, 하나님나라는 자유의 나라이다. 자유 없는 세계는 자유..

자유와 행복 / 정병선목사

사람은 아이든 노인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편안해하며 즐거워한다. 하는 일이 비록 힘들고 고단할지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일을 할 때에는 활기를 느끼고 힘든 줄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을 할 때에는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힘들어 한다. 일을 해도 즐겁지가 않다.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내 곧 삶의 활기를 잃고 우울하게 된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인 대니얼 길버트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요양원에 거주하는 노인들에게 화초를 주고, 50%의 노인들에게는 화초를 돌보고 영양을 공급하는 일을 스스로 하도록 했고, 나머지 50%의 노인들에게는 직원 한 명을 투입해 직원이 화초 돌보는 일을 결정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6..

불만족스런 하나님나라(밀과 가라지 비유)(마13:24-30) / 정병선목사

예수님의 비유를 읽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비유를 신앙적인 교훈이나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비유는 말 그대로 하나님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사태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며, 종국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나라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실 때면 항상 “하나님 나라는 …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신 것도 해석의 폭을 한정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하나님나라 비유를 신앙적인 교훈이나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읽는 것은 아주 잘못 읽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적이고 도덕적인 교훈을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말할 수 있..

죽는 날까지 쉬지 말아야 할 세 가지 / 정병선목사

중국의 문호 왕멍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생존이고, 다른 하나는 배움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배움은 그 폭이 매우 넓다. 는 책에서 “비록 나의 학력은 고등학교 1학년에 그쳤지만, 그 이후 나는 조금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읽었으며, 각 분야의 지식들을 쌓아나갔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모셨고, 곳곳에 나의 교실이 있었고, 시시각각 언제나 학기 중이었다.”고 했다. 그는 늙어서도 “학생”을 자칭하며 살았다. “나는 이미 고희의 나이를 넘긴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학생이다’라고 스스로를 칭하고 있다. …… 그러나 오직 독서만이 아니다. 가장 좋은 스승은 생활이며, 가장 좋은 교실은 실천이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모든 것을 망라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