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554

소유의 부요를 넘어 삶의 풍성으로 / 정용섭 목사

돈은 단지 돈이 아니다.산업자본주의가 발아하기도 전인 17세기에 극작가 세익스피어가 한 말을 들어보자.“금? 귀중하고 번쩍거리는 순금? 아니, 신들이여!헛되이 내가 그것을 기원하는 것은 아니라네.이만큼만 있으면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네.나쁜 것을 좋게, 늙은 것을 젊게, 비천한 것을 고귀한 것으로 만든다네.이것은 사제를 사제단으로부터 유혹한다네. 풀기도 하고 매기도 한다네.저주받은 자에게 축복을 내리고,문둥병을 사랑스러워보이게 하고, 도둑을 영광스런 자리에 앉힌다네.”(아테네의 티몬, 제4막3장).그렇다. 돈은 과거에도 신적인 권능을 행사하는 최고의 우상이었다. 소비가 곧 생활이 되어버린 오늘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자본이 왕 노릇하는 이 시대는 소비 능력이 곧 인간의 능력으로 통하..

역설의 정점(계1:9-20) / 정병선목사

이 세상과 삶은 신비와 모순, 역설로 가득합니다. 물론 나름대로 질서도 있고,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신비와 모순, 역설이 가득합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부부가 평생을 함께 살아도 서로를 잘 모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나도 나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요. 인생을 살면 살수록 신비와 모순과 역설 투성이인 세상이 보입니다. 인생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내가 모른다는 사실만 확인됩니다. 그런데 세상보다 더한 신비와 모순과 역설이 가득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은 다 신비하고, 모순 덩어리이고, 역설로 가득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가..

심리적 위로를 넘어 말씀의 깊이로 / 정병선목사

사람들은 종교를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여, 특정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진실이 무엇이냐보다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인생살이에서 마음을 깊이 내려놓을 만한 의지처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종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종교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다독여주고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는 게 사실이다. 그것이 종교의 전부일 수는 없지만 종교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런 차원의 종교적 기능을 넘어서는 곳에 위치한다. 기독교는 심리적 위로나 마음의 안정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현재의 존재와 삶을 위로하거나 안정시키는 것을 본질적으로 거부..

반드시 속히 될 일(계1:1-8) / 정병선목사

요한계시록은 일차적으로 요한이 목회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교회가 예배를 드릴 때에 읽고 들으라고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편지를 쓰면서 서두에서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편지는 사사로운 편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그리고 내가 편지에서 말하는 모든 내용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말입니다. 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때가 가깝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 편지에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이 담겨 있으니 귀담아 듣고 힘써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이 실현된다는, 계시가 현실이다, 지금 눈앞의 현실은 아니지만 분명한 현실이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 첫걸음(계1:1-3) / 정병선목사

계시록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예언한 책일 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암호로 가득한 책이라고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성도들은 읽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책, 하나님께 직통 계시라도 받아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막연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계시록에는 낯선 상징과 이미지들이 가득하고, 천사와 괴기스런 동물들이 등장하고, 무시무시한 심판과 전쟁이야기가 많고, 뜻 모를 숫자가 등장하긴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들에게 기죽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해독해야 할 신비한 암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이미지와 상징은 이미 구약에 나와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사도 요한 당시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

사울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갈1:11-14,빌2:5-8) / 정병선목사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자기가 예수의 사도가 된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전하는 예수의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전수받은 것도 아니라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그러면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합니다(1:13-14). 빌립보서에서는 자신이 정통 유대인임을 강변하고 있습니다(빌3:4-6).사실 정통 유대인의 인생 목표는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창조주요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시며 온 우주의 주재이신 그분을 경외하면서(합당한 두려움을 품는 것) 그분과 친밀한 사귐을 갖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사울도 그런 보편적인 유대인의 정서와 세계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말씀샘교회 창립의 변 / 정병선목사

하늘의 별똥별처럼 잠시 있다가 스러지는 교회가 허다한 시대, 교회 설립이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에 말씀샘교회가 또 하나의 변죽을 울리며 등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수치와 비루함으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교회에 또 하나의 덧칠을 하는 건 아닐까?’라는 염려가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설립이라는 길을 나섰다. 사실 교회 개척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으면 기존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와 함께 효과적인 분업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재의 나에게 걸맞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하기에는 너무도 옹졸하고 편협한 목회의 현실, 복음에 대한 이해의 간극, 협력자로 살기에는 이미 먹어버린 세월, 협력 사역의 한계 등등이 그 길을 가로막았다. 물론 흐르..

우울증, 한의학으로 말하다. / 정병선목사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 한의사 강용원이 쓴 「안녕, 우울증」이다. 저자의 이력은 매우 독특하다. 그는 일찍이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는 학문이라 판단하고 삶의 행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가 신학을 공부해 성직의 길로 접어들어 대학생, 청년 교육활동에 전념했다. 그 과정에서 이 땅의 사회, 역사 문제에 눈을 뜨고는 성직을 내려놓았고, 사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한의대에 입학하여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결국 이성적인 분석과 합리로 점철된 서양의학, 마음과 몸의 이분법에 잘려 몸의학으로 환원되어버린 서양의학과 중국의학을 넘어서지 못한 우리 의학의 한계를 발견하고 우리 생태에 맞는 의학을 탐색하며 살고 있다. 그는 모름지기 온 몸과 삶으로 우리 존재와 삶을 고민하며 출구를 탐구하..

제2의 목회를 앞두고 / 정병선목사

건강의 위기 앞에서 한길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사적인 생활로 물러난 지도 어언 6년 6개월이 지났다. 내 삶의 전부였던 교회를 떠나 철저히 단독자로 살아야 했던 지난 시간은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일 없이 살아야 하는 몸의 고독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정신의 고독은 말할 것도 없고, 반복되는 입원과 불가능한 희망을 부여잡아야 하는 고뇌, 인정사정없는 손익계산 앞에서 철저하게 짓밟히는 자존심과 싸워야 했다.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됐으며, 매순간 노심초사하는 아내와 아들의 염려와 돌봄을 받으며 제한된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 시간은 그야말로 집안에 갇힌 따뜻한 광야의 세월이었다. 물론 단독자로 살아야 했던 그 세월이 단절의 시간이기만 했던 ..

톨스토이의 가출과 죽음(2) / 정병선목사

필자는 앞에서 톨스토이 부부의 불화와 가출이 진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듣기에 거북했을지 모르겠다. 도대체 진리가 어쨌기에 진리에 책임을 묻느냐고 말이다. 맞다. 진리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필자도 진리에 무슨 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단지 진리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과 후, 진리에 붙들리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양상의 문제가 파생된다는 것, 뜻하지 않은 관계의 파국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톨스토이 부부가 맞닥뜨린 불화와 갈등이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