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새벽종소리 2084

내 삶에서 하나님을 허용하는 것이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허용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시겠다고 성경에서 1,260번이나 이야기 하셨다. 우리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주님 오시기를 기다려 왔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의 중심에는 자기가 있다. 내가 움직이면 된다는 생각 말이다. 겸손한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뭘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이다. 그래서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런 기다림이 쌓이고 쌓이면, 열매를 맺게 된다 -조영호 목사의 ‘나타난 은혜’에서- 사랑하고 기다리라. 믿고 기다려라,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리라. 고 하십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

사탄의 올무에 걸려드는 사람은

사탄의 올무에 걸려드는 사람은 스캇 펙 박사는 그의 책 ‘거짓의 사람들’에서 “무지’와 ‘게으름’을 최대 죄악으로 꼽는다. ‘무지 중 최고의 무지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영적 무지’이다. 또한 게으름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태도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정직과 성실로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싫은 것이다. 그래서 종교행위로 액운은 피하고 행운을 얻으려고만 한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사탄의 올무에 걸려든다. 그런 사람들은 사탄의 조종을 받는 ‘거짓의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 -신우인 목사의 ‘버린 옛 생각, 달라진 인생’에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란, 땅의 존재가 종교행위를 통하여 신으로부터 복을 받으려는 모든 시도를 말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 자인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 자인가 독일의 신학자 '야곱 스펜서'는 '성경을 하나의 반지로 본다면 로마서는 그 반지의 보석'이라고 했다. 그런데 '보석인 로마서 중에서도 8장이 보석 중에 보석이요, 그 다음에 28절이 보석의 극치'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언뜻 보면 오해하기 쉽다. '예수만 믿기만 하면 좌로 가나 우로 가나 만사가 잘된다는 말씀이구나!' 이렇게 오해할 수가 있다. 신앙생활은 개떡같이 하면서도 예수 믿기만 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어떻게 사랑하는 자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자는 것이다. 진심은 거짓과 가식이 없고 위선이 없는 그런 순수한 사랑을 말한다. -..

설득하고 위협하고 흔들어도 걱정하지 말라

설득하고 위협하고 흔들어도 걱정하지 말라 성경은 1,500년 동안 40여명의 저자에 의해서 기록된 방대한 책이다. 아무리 성경이 방대해도 꿰뚫는 맥과 중심 주제는 있게 마련이다. 성경은 그 어떤 책보다 분명한 목적으로 기록된 책이다. 성경이 전하는 한 가지 주제는, 온 우주 만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으며,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고난받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신우인 목사의 ‘버린 옛 생각, 달라진 인생’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설득하고 위협하고 사정없이 흔들 것..

인간의 좌절과 한계의 선상에서

인간의 좌절과 한계의 선상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좌절을 경험한다. 그토록 믿고 따랐던 주님이 십자가의 형틀에서 비참하게 생애를 마치자. 제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끝난 좌절과 절망의 시간이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실 때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허탕을 침으로서 지금까지 자신들의 능력으로 살아왔던 제자들은 인간적인 한계를 느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실제의 생활에서의 경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좌절과 한계의 선상에서 능력의 주님이 손을 내미셨다.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기쁨과 환희보다는 죄인 된 자신의 모습을 보았으며, 주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작자 미상의 글 ‘우리의 위로자이신 그분’에서- 일이 잘되고 삶이 형통하면 자신이 경영을..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이스라엘에 가해졌던 많은 환난과 고통을 들으시고 살펴주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시면서 붙잡으시고 격려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는 나 자신만을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로 내가 힘을 얻고, 그로 인하여 다른 사람까지 능히 위로하도록 하신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세상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66:13) -작자 미상의 글 ‘우리의 위로자이신 그분’에서- 위로의 처소인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위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삶을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삶을..

위로자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몫

위로자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몫 ‘위로’라는 말은 원어로 (나함, 파라칼레오, παρακαλὲω) 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부르다’, ‘동정하다’, ‘위로받다’, ‘격려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가까이서 불러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며, 동정을 구하지만 동정할 자가 없고, 위로와 격려를 기다리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더욱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각박해진 이유는 모두가 고갈되고 갈급하기 때문이다. 만족과 평안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며 동정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만족을 찾기에 더 갈급하기에 위로자의 일은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의 몫이다. 왜냐하면 세상을 위로하시고 인생을 위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작자 미상의 글..

교만

교만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자아를 경외하는 마음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우리 모두를 영광을 도둑질한 범죄자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상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영광을 도둑질하고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열심히 개인적인 영광을 추구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우리의 공로로 돌릴 때가 생각보다 많다. 우리는 교묘한 우상 숭배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 것을 다른 것이나 특정한 장소에 속한 것으로 간주한다. -폴 트립의 [경외]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교만입니다. 사단은 교만을 사용하고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경외의 문제는 교만과 겸손의 싸움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관계에 있어서 대립하게 된다면 사실은..

검증

검증 제자는 군중을 따라가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면 이미 늦는다. 예전에는 개인의 능력으로 시대의 변화를 선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불확실하다. 그 이유는 검증이 안 되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런 스펙을 갖추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할 때 그대로 하면 결과가 보장되는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과학을 맹신한다. 불안하니까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흐름을 읽으려고 한다. 안정감이 없기 때문이다. -조지훈의 [래디컬세대] 중에서- 내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은 검증하길 바라십니다. 때로는 나의 변화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나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검증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

자기 의를 버림

자기 의를 버림 회심하기 전의 인간은 무화과 잎으로 스스로를 가리려고 하고, 의무를 다함으로써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는 자신을 신뢰하고 자기 의를 세우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의에는 순종하지 않는다. 그러나 회심한 사람은 자기 의를 누더기처럼 여긴다. 더러운 거지의 옷을 벗어던지듯 자기 의를 내던져 버리는 것이다. -조셉 얼라인의 [회심의 은혜]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자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더이상 자기 의를 덧입고 살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의가 채워져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거듭나거나 신앙의 깊은 맛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회심한 사람은 자기에게서 의를 찾지 않습니다. 오직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