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3 15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 2:1-12)

가버나움에 일어난 중풍병자 치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집에 계시다는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서 들어 갈 수가 없자 네 사람이 예수님 계신 집의 지붕을 뚫고 환자를 예수님께로 내립니다. 참으로 대단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사람의 중풍병 환자에 대한 사랑과 중풍병 환자의 간절함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집약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께 환자를 데려오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 믿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그곳에 모여있는 서기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에 대하여 신성모독이..

사랑 없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사랑 없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글쓴이/봉민근 나는 가끔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문제가 있음을 실감한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 손님 대하듯 하는 나를 본다. 친밀감보다는 늘 사무적이고 이론적이며 형식적인 나의 태도를 보기 때문이다. 늘 가슴에 와닿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요술 방망이 대하듯 하는 나의 태도에 죄송함을 느끼곤 한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과의 깊은 내면의 대화보다는 나의 필요만을 요구하는 얌체 같은 모습이 나 자신 믿음 없는 태도에 실망을 할 때가 많다. 좀 더 하나님의 깊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하나님을 좀 더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능 하심만을 믿을 뿐 진정한 깊은 사랑이 내게 없다. 그렇게 ..

들어주기를 힘쓰는 삶

들어주기를 힘쓰는 삶 사람이 말하는 것은 2∼3년이면 배우지만 듣는 것을 배우기까지는 8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청은 평생의 학습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듣는 방식에는 네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판단하며 듣는 것, 질문하며 듣는 것, 조언하며 듣는 것, 감정 이입하며 듣는 것입니다. 한자 '들을 청(聽)'은 여러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풀이해 보면 '듣는 것이 왕처럼 중요하고 열 개의 눈으로 보듯 상대방에게 집중해 상대와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인생에서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집중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우리는 '들어 달라고 떼쓰는 삶'보다 '들어주기를 힘쓰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3-28)

막 2:13-28 묵상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고 그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 양에게 생명과 풍성한 꼴을 주시는 목자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금식 논쟁을 통해 새 시대 도래를 선포하십니다. 율법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십니다.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참 주인이 되십니다. 안식을 성취하신 예수님 안에 참 안식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예수님 안에 참 생명과 참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생명과 소망이 되십니다. 그 사랑과 은혜가 나를 나 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