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이주민의 딜렘마(창세기303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6. 13. 06:11

해설: 

야곱은 가나안 땅에 이르러 세겜이라는 성읍에 정착합니다. 정식으로 토지까지 매입 함으로써 그는 그 땅에 합법적인 주민이 됩니다. 그곳에 정착한 지 얼마 지난 어느 날, 야곱의 딸 디나가 “그 지방 여자들”(1절)을 찾아 갔다가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이주민은 자주 토착민에게 이런 폭행을 당하곤 했습니다. 세겜은 그 지방의 통치자인 하몰의 아들로서 대단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네 가지 동사(“보다”, “데리고 가다”, “성폭행을 하다”, “욕되게 하다”)를 사용하여 세겜의 행동이 악한 것이었음을 드러냅니다(2절). 그는 디나를 범한 후에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3절). 그의 사랑은 빗나간 집착이 되어 디나를 자신의 집에 가두어 둡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야곱은 가축 떼를 몰고 나가 있던 아들들이 돌아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5절). 그는 딸에 대한 염려와 세겜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었을 것입니다. 그는 딸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딸을 데려오기 위해 전쟁을 불사할 수도 없는 딜렘마에 빠졌습니다.  

 

아들들이 돌아오자 야곱은 디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 말을 듣고 아들들이 분노해 있을 때 하몰과 세겜이 청혼을 하러 찾아옵니다. 하몰은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세겜과 디나를 결혼시키고 앞으로 통혼을 하면서 지내자고 제안을 합니다. 세겜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과하면서 어떤 대가든 치를테니 결혼시켜 달라고 청합니다(6-12절). 겉으로는 정중한 제안 같아 보이지만, 디나를 집에 가두어 놓고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야곱과 그 가족을 능멸하는 처사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복수를 계획합니다. 그들은 하몰의 청을 들어 줄 듯 한 태도를 보이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겁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에게는 동생을 줄 수 없으니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청혼을 받아 들이겠다고 답합니다. 하몰과 세겜은 이 계약을 통해 야곱의 많은 재산을 거저 먹을 것이라고 여기고 그 성읍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그들은 하몰과 세겜의 말에 동의하여 한 날에 모두가 할례를 받습니다(13-24절). 

 

사흘 째 되는 날 야곱의 아들들 중 시므온과 레위(디나의 친오빠들)가 성읍으로 쳐들어가 남자들을 모두 살해하고 세겜 집에 갇혀 있던 디나를 구출합니다(25-26절). 그들은 할례를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서 제대로 대항해 보지도 못하고 당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성읍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약탈을 자행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습니다(27-28절). 

야곱은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고 시므온과 레위를 불러 크게 나무랍니다(29절). 그는 그 일로 인해 자신이 “사귀지도 못할 추한 인간”(30절)으로 알려질 것이며 또한 더 큰 보복을 불러 올 것이라고 탄식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여동생이 몹쓸 짓을 당했는데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저항합니다(31절). 

 

묵상:

 

 

디나의 성폭행 사건은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디나에게 행한 세겜의 행동은 분명히 징벌 받아야 할 죄였습니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세겜이 디나를 범하고 결혼하려 한 것은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새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을 길들이고 자신의 수하에 들어오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에 대해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일은 더욱 악합니다. 그들은 무고한 성읍 사람들을 모두 살륙했고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유린하고 약탈했습니다. 

아버지의 책망에 대해 시므온과 레위가 저항하며 내뱉은 말(31절)은 우리가 자주 대면하게 되는 딜렘마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동생이 능욕을 당하고 사로잡혀 성 노리개가 된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악행을 묵인하고 용서해 주는 것이 해법은 아닙니다. 그의 악행에 대해 응징하고 디나를 구해 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세겜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다치게 됩니다. 그러니 복수를 행하면 애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이스라엘 군이 네 명의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270여 명의 가자 주민들을 죽게 한 것은 세겜 사건의 현대적 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딸이 당한 폭행에 대해 듣고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견디고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세겜 땅에 이제 겨우 자리를 잡은 이주민입니다. 많은 가족과 종들과 가축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는 소수자였습니다. 당장 딸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고 싶었지만, 싸워서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딸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숨막힐 듯한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디나처럼 무력하게 유린 당하는 이주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야곱처럼 이주민으로서의 약점 때문에 불의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 때로 시므온과 레위처럼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앙갚음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복수 행위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힙니다.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이주민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불안 해집니다. 미국에서 남미 이주민들이 자주 당하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게 얼키고 설키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도 어렵고 그 뜻을 행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때로 손과 발에 피를 묻히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