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져 주시는 하나님 (창세기 32장) / 김영봄목사

새벽지기1 2024. 6. 11. 06:33

해설:

라반을 떠나 보낸 후 야곱이 고향 땅으로 향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 앞에 나타납니다(1절). 하란 땅으로 향할 때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그 땅을 떠날 때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곳은 하나님의 진이구나!”라고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짓습니다(2절).

 

야곱은 선발대를 보내어 형 에서에게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리라고 이릅니다(3절). 그는 형을 “나의 주인”으로, 자신을 “당신의 종”으로 부릅니다(4절). 형에 대한 두려움과 회개의 감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가축 떼와 노예들을 딸려 보냅니다(5절). 하지만 얼마 후 선발대가 헐레벌떡 돌아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에서가 사백 명의 사병을 동원하여 그를 치러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6절). 야곱은 가족과 가축을 두 패로 나누어 놓고(7-8절)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보호 해주시기를 간구 합니다(9-12절). 

 

다음 날, 야곱은 형 에서에게 안길 선물을 고릅니다. 막대한 양의 가축을 여러 떼로 나누고 시차를 두고 에서에게 가게 합니다(13-16절). 그렇게 함으로써 형의 분노를 누그려 뜨릴 수 있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야곱은 각 떼를 이끌고 가는 종들에게 전할 말을 단단히 이릅니다(17-20절). 시차를 두고 모든 떼를 보낸 후에 야곱은 가족들과 그곳에서 밤을 맞았는데, 한밤 중에 일어나 가족들을 얍복 나루를 건너로 보내고 홀로 남습니다(21-23절). 염려와 걱정으로 잠에 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밤 중에 홀로 남았다면 야곱은 당연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이 할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야곱이 “어떤 사람과 씨름했다”(24절)고 표현합니다. 야곱이 환상을 본 것인지, 치열한 기도를 비유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동이 틀 때까지”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뜻일 지 모릅니다. “엉덩이 뼈를 쳤다”(25)는 번역은 “엉덩이 뼈를 만졌다”고 바꿔야 합니다. 그로 인해 그의 엉덩이 뼈가 위골 됩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고집합니다(26절). 

 

그 사람은 야곱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야곱이라고 답하자 그 사람은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다’)이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27-28절). 하나님과도 겨뤄 이기고 사람과도 겨뤄 이겼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그 사람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그 사람은 이름을 묻지 말라고 답하고는 축복을 베풀어 주고 떠납니다(29절). 

 

그제서야 야곱은 자신에게 나타났던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짓습니다(30절). 축복을 받고 나서 그는 일어나 개울을 건너는데 간밤의 씨름으로 인해 엉덩이 뼈가 위골되어 절뚝 거려야 했습니다. 그 때 마침 해가 솟아 올라 절뚝 거리며 개울을 건너는 야곱을 내려 비춥니다(31절). 그런 연유로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엉덩이 뼈의 큰 힘줄을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32절).  

 

묵상:

살다 보면 절체절명의 때가 있습니다. 피할 수도 없고 대면할 수도 없는 갈림길에 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는 달리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야곱은 지금 그러한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하란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사백의 군사를 대동하고 자신을 치러 오고 있는 형을 대면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들과 자녀들까지 모두 죽을 지도 모를 두려움에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밤이 지나기 전에 하나님과 담판을 짓기로 마음 먹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하나님에게 죽겠다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저자는, 야곱이 가족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어둠 가운데 홀로 남았을 때 갑자기 어떤 남자와의 씨름이 시작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야곱이 하나님과 담판을 짓기 위해 가족들을 떠나 보내고 혼자 남았을 것입니다. 지금 당한 위기를 해결할 길은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밤새도록 치룬 씨름은 그의 치열한 기도에 대한 비유일 수도 있고 그에게 일어난 하나님 체험일 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위기를 해결해 주시든지 자신을 죽이시든지 하라면서 끝까지 싸웁니다. 그는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뤄 이긴 것입니다. 

 

야곱도, 이 이야기를 전한 저자도,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도, “야곱이 하나님과 겨뤄 이겼다”는 말을 곧지 듣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기려 싸우신 것이 아니라 져 주기 위해 싸우신 것입니다. 어린 조카와 씨름하는 삼촌이 이길 듯 이길 듯 하다가 조카가 포기하려 할 즈음에 일부러 져 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야곱의 열심을 보시고 일부러 져 주신 것입니다.  

 

날이 밝자 야곱은 절뚝 거리며 얍복 나루를 건너는데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31절)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얍복 나루에서의 치열한 씨름은 야곱에게 신체적인 장애를 안겨 주었지만 그에게 새로운 날을 보게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