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용서의 능력(창세기 33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6. 12. 05:30

해설:

야곱이 보니 멀리서 형이 사병들을 데리고 오는 모습이 보입니다(1절). 하나님에게 약속을 받았으나 야곱에게는 여전히 형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맨 앞에 서고 만약을 대비하여 자신의 뒤로 두 여종과 그 자녀들, 그 뒤로 레아와 그 자녀들이 따라오게 하고 라헬과 요셉은 맨 나중에 세웁니다(2절). 형이 다가오자 야곱은 그 앞에 가서 일곱 번이나 땅에 절을 합니다(3절). 그것은 당시 백성이 왕을 알현할 때 행하는 관례였습니다. 야곱은 형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는 달려와서 동생을 끌어 안았고 입을 맞추어 반가움을 표했고, 두 사람은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4절). 에서가 이미 야곱을 용서하고 반기러 나온 것인지, 라반의 경우처럼 복수하러 오던 중에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용서하게 되었는지, 저자는 말하지 않습니다. 사병 사백 명을 거느리고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후자가 더 사실에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불러 에서에게 인사를 시킵니다(5-7절). 에서는 왜 자신에게 가축 떼를 미리 보냈느냐고 묻습니다. 야곱이, 형님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답하니, 에서는 그런 선물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사양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의 선물을 받아 달라고 간청했고 에서는 마지 못해 받아 들입니다(8-11절). 이 대화에서 야곱은 계속하여 형을 “나의 주인”으로, 자신을 “당신의 종”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에서는 “아우야”(9절)라고 부름으로써 형제의 우애를 드러냅니다. 

 

반가운 해후를 한 후에 에서는 야곱에게, 자신이 사는 세일로 가서 같이 살자고 제안합니다. 세일은 에돔 민족이 살던, 가나안 땅의 동남부 지방을 가리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브라함이 약속 받은 가나안 땅의 경계 바깥에 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밧단아람에서 돌아 왔으므로 형의 제안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형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고 따라 갈 수도 없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일행은 에서의 일행과 같은 속도로 행군할 수가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형에게 먼저 떠나라고 청합니다(12-14절). 실제로 야곱은 어린 자녀들과 많은 가축 떼를 몰고 가야 했기에 에서와 사병들의 행군 속도에 맞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에서는 장정 몇 사람을 호위대로 남겨 두겠다고 제안합니다. 야곱은 그럴 필요 없다고 사정했고, 결국 에서는 사병들을 데리고 세일로 돌아갑니다(15-16절).

 

야곱은 에서의 일행을 보낸 후에 숙곳에서 잠시 머뭅니다(17절). 숙곳은 요단 강 동편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 다음 야곱은 가솔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 세겜에 이릅니다(18절).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야곱은 세겜 성의 성주인 하몰에게 은 백 냥을 주고 땅을 매입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엘엘로헤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묵상:

에서의 상황을 상상 해봅니다. 야곱이 하란에 머물러 사는 이십 년 동안 그는 분가하여 세일로 이주합니다. 오늘의 요르단 남부 지방의 옛 이름입니다. 페트라 유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삭이 그에게 기도하면서 “네가 살 곳은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27:39)라고 했는데,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서는 그곳에서 크게 번성합니다. 앞에서 거듭 보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말은 그분의 축복에서 배제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민으로서의 적통이 야곱으로 이어졌지만, 에서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사백 명의 사병을 이끌고 올 정도로 그의 세력은 크게 불어났습니다. 

 

야곱을 향한 그의 원한이 언제 어떻게 풀어졌는지, 저자는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서가 사병 사백 명을 데리고 세일에서 마하나임까지 달려 왔다는 사실은 그의 분노가 아직 풀리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는 야곱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세일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단서를 우리는 바로 앞에 나오는 라반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격적인 개입으로 인해 라반이 야곱에게 선대한 것처럼, 에서도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야곱을 용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웬만한 분노는 스스로 마음을 고쳐 먹음으로 풀 수 있습니다. 혹은 세월이 약이 되어 시간과 함께 풀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돌리려 할수록 더 커지는 원한도 있습니다. 그런 원한은 세월이 지나도 풀리지 않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가지고 있던 원한과 앙심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감정의 덩어리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은혜가 아니고는 풀어지지 않습니다. 야곱이 밤새도록 씨름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낼 때 하나님은 에서의 마음을 만지시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것이 지나친 일일까요?

 

분노와 원한은 과거에 붙들려 살게 만드는 일입니다. 과거의 상처에 붙들려 살면 현재를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만듭니다. 용서는 가장 먼저 용서하는 당사자를 위한 일입니다. 과거의 유령으로부터 해방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야곱에게서 받은 상처를 마음에 품고 늘 끙끙대고 살았을 에서를 생각해 보고, 야곱을 용서하고 품어 안는 에서를 생각해 보면, 용서가 얼마나 사람을 달라지게 만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