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아들들이 벌인 일로 인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베델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1절). 그곳은 야곱이 하란으로 도피하던 중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던 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 야곱은 자신이 가는 길에서 지켜 주시면 그곳에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델로 돌아가는 대신에 세겜에 정착 했다가 끔찍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제서야 야곱은 그 모든 일이 영적인 문제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베델로 떠나기 전에 식구들을 불러 가지고 있던 이방 신상을 모두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가져 온 온갖 이방 신상과 장신구들을 세겜의 상수리나무 밑에 묻습니다. 귀고리를 특정한 이유는 신상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디나의 일로 세겜 사람들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그들에게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어라”(2절)고 명합니다.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요구한 것입니다. 가족들은 야곱의 말에 순종했고, 그는 모든 것을 세겜에 묻어 두고 베델로 떠납니다(3-4절).
야곱의 가족과 종들 그리고 가축들의 규모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대규모의 이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 성읍을 거쳐 가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공격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해 그들은 안전하게 베델에 이릅니다(5-6절). 야곱은 그곳에서 단을 쌓아 제사를 드립니다(7절). 하나님은 다시금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부르겠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축복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십니다(9-15절).
그 즈음에 야곱은 세 가지의 마음 아픈 일을 겪습니다. 하나는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를 잃은 것입니다(8절). 드보라는 하란에서부터 리브가를 충실히 돌본 유모입니다(24:59). 그는 리브가를 따라 이삭의 집으로 와서 같이 살았습니다. 앞뒤 내용을 보면, 리브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드보라는 이삭에게 아내 역할을, 야곱에게 어머니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하란으로 갈 때 드보라가 동행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쨋거나, 야곱은 드보라를 깊이 의지하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야곱은 드보라를 베델 아래쪽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를 지냅니다.
얼마 후에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습니다. 그것은 베델을 떠나 에브랏(베들레헴)에 이르기 전의 일입니다. 라헬은 이동하는 동안에 둘째를 낳고 숨을 거둡니다. 그 아들이 베냐민입니다(16-18절). 야곱은 라헬의 시신을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장사를 지냅니다.
그런 다음에 에델 망대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정착 했는데, 얼마 후 큰 아들 르우벤이 라헬의 몸종 빌하를 범하는 참담한 일이 일어납니다(21-22절).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이 소식이 들어갔다”고만 적어 놓았는데, 이 일로 야곱이 겪었을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르우벤은 장자로서의 권리를 상실합니다(49:3-4).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의 일로 인해 잔인한 살륙을 행합니다(49:5-7). 이런 까닭에 장자의 권리가 유다로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요셉의 이야기로 전환하기 전에 야곱의 열두 아들에 대해 소개하고(23-26절), 이삭의 죽음을 전합니다(27-29절).
묵상:
야곱은 하란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란에서의 이십 년 동안 믿음의 연단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법을 충분히 익혔을 때, 그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 옵니다. 그 길에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사명을 받습니다. 형 에서와의 감격적인 화해를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 정도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겜에서 그는 일생일대의 불행을 만납니다. 그 일로 인해 더 이상 세겜에서 발 붙이고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베델 즉 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곳으로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베델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야곱은 가는 길에서 자신을 지켜 주셔서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시면 그곳에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28:22). 그 약속을 잊고 있었는지 아니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세겜에서 얻은 모든 것을 땅에 묻어 두고 베델로 올라가 새출발을 했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다시 확인 받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야곱은 계속 상실의 아픔을 겪습니다. 어머니처럼 의지했던 유모 드보라를 잃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그토록 아꼈던 야곱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상실의 아픔이 채 치유되기도 전에 라헬을 잃어 버립니다. 라헬을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기억한다면, 그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큰 아들 르우벤이 빌하를 범하는 패륜을 행합니다. 빌하를 범했다는 말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혔다는 뜻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야곱의 인생은 참으로 드라마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축복의 약속을 받는다는 것은 인생 여정에서 당해야 하는 모든 풍상으로부터 면제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에 나 혼자만 산다면 나만 잘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깨어진 세상에서 상처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얼키고 설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라반이나 세겜 같은 악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식구들로부터 심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인생이라는 선물 보따리에 들어있는 생로병사의 불행을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하여 자신을 만들어 가시고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믿고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상실의 아픔과 불행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원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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