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천당 방문기(3)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16. 05:19

어젯밤에 갑자기 기억이 되살아난 사건이 있는데, 그걸 오늘 그대에게 하겠소. 천당 사무실의 어느 방에 들어가면 특별한 장치를 볼 수 있소. 각각의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받은 심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라오. 마치 사이버스페이스처럼 번호만 누르면 어떤 사람의 심판 결과와 그 과정이 입체 동영상으로 펼쳐진다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심판까지 미리 볼 수 있다는 거요. 천당은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곳이라는 걸 그대도 알고 있지 않소. 내가 그대를 진작 알았으면 그대의 미래를 알아오는 건데, 안타깝게 되었소. 이제는 나에게 그럴 능력이 없소이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소. 김 아무개 목사의 번호를 눌러보았소. 김 아무개 목사는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소. 교회를 엄청나게 키운 바로 그 목사요. 뭐, 그 목사에 대해서 긴 설명은 맙시다. 하여튼 재판 과정만 알려주리다. 그냥 직접 화법으로 전할 테니, 그 행간의 의미는 그대가 알아서 살피시오.

 

주님- 당신, 세상에서 뭐 하다 오셨소?

목사- 원, 그렇게 물으시다니 정말 섭섭합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은 온 천하가 다 아는데, 주님이 그걸 몰라서 물으시다니요.

주님- 그것 참, 이상하군. 내 일을 한 사람의 명단에 당신 이름은 없소이다.

목사- 그럴 리가 있나요. 뭔가 사무 착오가 생긴 게 분명합니다. 제 설교를 듣고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 헌금을 바쳤는지, 주님은 아시잖습니까? 제가 지은 교회당이 얼마나 큰지, 주님은 아시잖습니까? 그것 참, 말이 안 통하네요.

주님- 신자들로 헌금을 많이 바치게 한 것이 바로 내 일이라는 말이오?

목사- 그렇고말고요. 그 헌금으로 정말 많은 일을 했다구요. 그런 거 다 말씀드려볼까요?

주님- 아, 그만 해요. 그거 다 알고 있어요. (베드로를 향해서) 그 분을 모셔오세요. (베드로, 어떤 사람을 데리고 들어온다. 목사를 향해서) 저 분을 아세요?

목사- 잘 모르겠는데요.

주님- 김 목사 당신이 평생 떵떵거리며 목회하던 교회 신자였소. 기억해보시오.

목사- 아, 그렇군요.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순진하고 착실한 집사님이셨지요. 남편 없이 세 명 아이들을 키우느라 온갖 허드레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십일조 헌금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던 분이에요. 매번 내 설교에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대단한 분이셨지요. 저분만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얼마나 드는지, 정말 할렐루얍니다.

주님- 십일조 헌금을 드리지 않으면 주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거라고 설교했지요?

목사- 아멘, 그렇고말고요. 그게 다 주님이 축복을 받는 길이니까요.

주님- 저분이 그런 말 때문에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아나요? 삶이 늘 그늘이었소. 불안의 연속이었다 하오. 자기의 가난을 축복을 못 받은 탓으로 여기고 평생 자책하면 살았다오. 저분의 운명을 책임지시오.

목사- 어떻게 책임을 져야 되나요?

주님- 그대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할 거요. 어린아이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게 낫다는 말을 말이오. 그대는 많은 사람들을 실족케 했소이다.

목사- 그래도 제가 교회를 위해서, 교단을 위해서, 그러니까 주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많이 했으니 이런 작은 일쯤은 그냥 눈 감아 주실 수 없나요?

주님- 당신이 생각하는 그 위대한 일들이야말로 작은 일이라네.

(2010년 3월26일, 금요일, 햇빛 가득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