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밥 먹기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16. 05:24

그대는 밥 먹을 때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편이신지, 아니면 그냥 먹기만 하는 편이신지. 서양 사람들은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많은 편인 반면에 동양 사람들은, 특히 한국 사람들은 대화를 하지 않는 편이오. 요즘은 한국 사람들도 제법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소. 특히 젊은 사람들은 말없이 있는 거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오. 대학교 학생 식당에 들어가 보셨소. 시끄러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소이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님으로부터 밥 먹을 때 말을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은 것 같소. 실제로 그런 충고를 들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 무의식 한편에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특히 큰 소리로 떠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를 잡고 있는 거는 분명하오. 그렇지만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나 교회에서 예배 후에 밥을 먹을 때는 편안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편이오. 어떤 쪽이 꼭 좋다거나 나쁘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거는 아니오.

 

그대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 경험으로는 혼자 밥을 먹을 때가 밥맛이 가장 좋소. 이상하게 들리시오? 흔히들 하는 말로는 밥은 함께 먹어야 맛이 난다고들 하긴 하오. 혼자 청승맞게 밥을 먹으면 아무리 좋은 반찬을 곁들여도 맛이 안 단다는 거요.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오. 그게 더 옳은 말일지도 모르겠소. 나도 보통 때는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소. 그러나 정말 깊은 맛은 혼자 먹을 때 느낄 수 있소. 밥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오. 무슨 일이든지 집중하지 않으면 깊은 맛을 모르는 법이라오. 우리는 집중하지 않고 대충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 있어서 밥도 그렇게 먹는 것 같소. 더 맛있는 거를 찾는 이유도 역시 밥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오.

 

그대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밥 먹는 일에 집중한다는 말은 그것을 도(道)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라오. 절에서 승려들이 밥 먹는 걸 발우공양(鉢盂供養)이라고 한다오. 그것에 얽힌 일화들은 인터넷에서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테니, 내가 말하지는 않겠소. 그들은 경전을 공부하거나 염불을 외우고 예불을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밥 먹는 것도 구도로 여기는 거라오. 그러니 발우공양 때 말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하오. 내가 알기로는 수도원에서도 밥을 먹을 때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소. 수도사 중의 한 사람이 성경을 읽고 나머지는 그것을 들으면서 밥을 먹기만 하오.

 

며칠 전에 나는 가족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집에서 혼자 밥을 먹었소. 마침 밥을 새로 했소. 우리 집에서 밥은 원래 주로 내가 하오. 전기밥솥 뚜껑을 열고 먼저 주걱으로 밥을 휘저었소. 그래야 밥알 사이에 간격이 생겨서 먹기에 적당한 탄력을 유지하는 거요. 찹쌀을 약간 넣어서 지은 탓인지 모르겠으나 밥이 얼마나 기름지고 찰진지, 다시 놀랬소이다. 그 밥 냄새는 또 얼마나 황홀한지 모르겠소. 공기에 담았소. 거기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도 신기했소. 밥을 입에 넣고 씹을수록 단맛이 진해졌소. 김치와 김과 콩자반으로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었소. 그 순간에 나는 이 세상에서 행복하기 위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절감했소이다. 그대는 오늘도 맛있게 저녁을, 또는 아침을 드셨소? 매번의 밥 먹기를 성찬 대하듯이 해 봅시다. (2010년 3월27일, 토요일, 햇살 후에 구름, 어제 해군 초계정 침몰로 40 여명의 젊은이들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으로 하루 종일 마음이 아픈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