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의 나라(17)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15. 07:28

'그러나 더 큰 위험이 있다. 그것은 교회가 사회의 모든 문제로부터 자기를 분리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얼핏 보기에 사회 과정으로부터의 그런 분리는 참으로 철저한 비판 형태처럼 보일지 모른다. <중략> 그리하여 전적으로 영적인 일에만 전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치적인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경멸하는 교회들이 실제로는 보수주의의 아성이 되고 있다. 거기서는 사회의 현실 변혁에 참여할 수 있는 에너지가 초자연적 영역으로 흘러간다.'(117)

 

그대는 세상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이 진보와 보수로 구별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요. 한쪽은 현실 참여에 방점을 두고, 다른 한쪽은 분리를 주장하오. 한국교회 전체를 이렇게 두 가지 갈래로만 배열한다는 것은 단순화의 함정에 빠져들 위험성이 있지만, 우리의 주제를 선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주기 바라오. 현실 참여를 주장하는 쪽은 주로 진보적인 교회이고, 분리를 주장하는 쪽은 주로 보수적인 교회요. 늘 그런 것은 아니고 대체로 그렇다는 거요.

 

양쪽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오. 현실 참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역사의 주인이라는 신앙고백에서 그 정당성을 찾을 수 있소.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들이라오. 그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는 일들이 일어난다면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당연히 투쟁해야 하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시간이 한정 없이 필요하겠구려. 이렇게만 정리하고 넘어갑시다. 생명을 생명 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이오. 그것을 오늘 우리는 정의와 평화로 경험할 수 있소.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현실 참여가 필요하오.

 

교회와 현실의 구분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 세상의 문명과 역사 발전에 의존적이지 않다는 사실에서 그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복지가 완전히 실현된 세상을 예상해보시구려. 그 순간이 오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 같소? 아니라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현실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오. 따라서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보수적인 교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소. 진보와 보수 양쪽이 모두 나름으로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오.

 

이 두 가지 입장이 사실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라오. 진보 쪽의 교회라고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가 역사 개량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오. 보수 쪽의 교회라고 하더라도 주기도에도 나오듯이 가시적인 세상의 삶과 역사 안에 하나님의 뜻이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오. 건전한 신학과 상식을 아는 교회라고 한다면 어느 쪽의 입장에 있든지 서로 다른 쪽의 입장을 인정하게 될 거요.

 

문제는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있소이다. 특히 자칭 보수라 하는 분들의 주장에 문제가 있소.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건전한 보수가 없고 극우 세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형국과 비슷하오. 한국사회가 바로 한국교회의 자화상이라 보면 될 거요. 그들은 자기에게 편리할 때만 정교분리를 외친다오. 일반 매스컴에서 교회의 비리를 지적하면 크게 반발하면서 교회가 운영하는 사학에 관한 법 개정에는 뻔뻔스러운 방식으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거요.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추세는 위에 인용한 판넨베르크의 글에도 드러나듯이 사회 변혁에는 완전히 무관심하고 모든 신앙의 에너지를 초자연적인 것에만 쏟아내는 데에 있소. 비현실적인 것에 취해서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아편과 같은 효과를 낸다오. 오늘 한국교회에 대한 희망에 찬 말을 전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오. 일단 모든 걸 잊고 편안한 밤을 맞으시오. 잠언 기자의 조언에 따르면 단잠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오.(2010년 3월25일, 목요일, 비, 눈, 먹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