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거부한다
지난 3월11일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양의 대자보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가 고대대학교 게시판에 나붙었다는 소식을 그대도 들었을 것으로 보오. 고려대학교는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명문대학교 중의 하나요. 김 양이 대학교를 자퇴한 이유는 대학공부에서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소이다. 대학이 진리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취업 준비를 위한 양성서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나왔던 이야기래서 김 양의 말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소. 아무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대로 길들여지는 판에 온 몸으로 저항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오.
금년에 대학교에 입학한 내 둘째 딸의 고등학교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건 아닌데, 계속해서 이건 아닌데, 하고 생각했소이다. 수능을 위해서 기계처럼 살았소. 지방에 있는 고등학생들은 그래도 양반인가 봅디다. 서울에 있는 아이들의 많은 경우가 중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한다고 들었소이다. 사춘기 시절부터 경쟁에만 몰두하고, 그것이 대학생활에도 이어진다면 나머지 삶이 어떨지는 불을 보듯 훤하오. 경쟁이 전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겠지만, 경쟁만 작동하는 사회라는 게 문제라는 말이오.
그대는 이런 풍토에서 대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이명박 대통령은 일전에 EBS에서 나오는 강의만 시청하더라도 수능시험을 보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하겠다는 말을 했소이다. 수능에서 EBS 강의를 70% 이상 출제하라는 말이더군요. 사교육이 대폭 줄이겠다는 뜻이랍니다. 마치 연대장이 대대를 시찰하면서 내던지는 방식으로 백년지대계인 교육 문제를 접근하고 있소이다. 어쨌든지 대한민국에서 이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소?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사회에서 크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제도가 정착되지 않는 한 입시제도의 개선과 공권력을 통한 단속은 미봉책에 불과할 거요. 대기업의 정규직과 하청 업체의 비정규직이 받는 연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확인하면 놀라실 거요. 어느 사회이건 연봉의 차이가 없을 수는 없지만 인격적인 모독을 느낄 정도로 차이가 난다면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소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학(大學)은 ‘큰 배움’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 거요.
하기야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에 의존해야 할 교회도 세속적인 성장논리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형편이니 이 세상을 탓할 수도 없구려. 김예슬 양, 파이팅!
사족: 동네 빵집 주인으로 떳떳하게 살아가는 프랑스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뜨여 링크해 놓겠소이다. (2010년 3월22일, 월요일, 여전한 꽃샘추위와 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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