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믿음과 수행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14. 06:11

믿음과 수행

 

어제 밤 편안히 잘 주무셨소? 한국교회의 미래라는 어제의 묵상 주제는 좀 무거웠소. 그것으로 인해서 혹시라도 수면에 방해를 받지 않았을지 염려되오.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파서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쓸 틈이 없는 건 아니시오? 그렇다면 다행이오. 모두가 한국교회의 미래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아니니, 자책하거나 미안해할 건 하나도 없소이다. 어제의 묵상에서 미진한 부분을 정리해야겠소.

 

우선 정리해야 할 대목은 상품논리에 대한 정의요. 상품은 많이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게 목적이오. 이를 위해서 고객들의 마음에 들도록 상품을 개량하고 포장도 그럴듯하게 하오. 지금 교회도 복음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소.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내 말하지 않으리다. 그걸 정리하면 교회가 복음을 도구적으로 다룬다는 뜻이오.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그대도 잘 아실 거요. 교회의 세속화요. 교회가 철저하게 세속적인 가치에 물든다는 말이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이 오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소. 복음을 널리 알려서 교회를 성장시키는 게 바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 아니냐고, 이를 위해서는 복음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상품화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이오.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논란을 벌이는 건 별로 지혜롭지 않소. 접점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오. 그러니 복음의 상품화, 즉 복음의 도구화를 극복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설명하는 것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소. 이것이 곧 복음의 본질이기도 하오.

 

그 답은 수행(修行)이라오. 복음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는 수행이오. 수행자는 자신의 영적 세계에만 몰두하오. 왜 그런지 아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피조물이라는 사실 앞에서 크게 놀라고 있소. 그들의 실존을 화염으로 불사르는 하나님을 도구로 이용할 수 없다는 엄정한 사실에 눈뜬 사람들이라오. 그러니 자기를 다른 이에게 선전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하오. 자기를 다스리는 일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어찌 다른 사람의 삶까지 참견할 생각을 하겠소이까. 말의 빚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으니 자신의 모든 책을 절판하라는 법정의 유언은 다 일리가 있다오.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수행이오.(2010년 3월19일, 금요일, 맑음,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