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無所有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13. 06:23

無所有

 

그대는 법정의 대표 수필집 <無所有>를 읽어보았을 것이오. 그가 마흔 살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쓴 수필을 표제로 삼은 책이외다. 그 수필은 법정이 지인에게서 얻은 난초에 얽힌 일화를 담담하게 풀어쓴 이야기요. 난초를 정성스레 키우다보니 결국 거기에 집착하게 되어, 친구에게 주었다고 하더이다. 그의 무소유 사상은 간디의 영향이 큰 것 같소이다. 그 수필의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간디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소.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1971년 3월, 현대문학)

 

어떤 이들은 법정의 이런 무소유 사상을 냉소적으로 봅디다. 출가자에게만 가능한 논리라는 말이오. 그런 논리는 이 세상에서 온갖 이해관계에 얽혀 사는 사람들에게 단지 관념에 불과하고, 따라서 언어유희이자 폭력이라는 거요. 또 어떤 이들은 이 무소유 사상을 패배주의로 몰아붙이기도 할 거요. 특히 기독교 승리주의 신앙에 몰두해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비칠 것으로 보이오.

 

그대도 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무소유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법정이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오. 그는 삶의 본질을,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뿐이외다. 그것은 누가 봐도 확실히 드러나는 진실이외다. 사람은 누구나 빈 몸뚱이로 와서 빈 몸뚱이로 돌아가오. 그것을 일종의 화두로 삼아 삶을 내면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 아니겠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무소유 사상을 낮춰본다는 것은 문맥을 전혀 모른다는 뜻이오.

 

소유가 집착을 불러오고, 집착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는 무소유 개념은 법정만이 하는 말이 아니오. 그 이전에도 얼마나 많은 스승들이 했는지 모르오. 성서도 곳곳에서 그런 말을 하고 있소. 법정으로 인해서 그 용어가 크게 부각된 이유가 그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그의 삶이 무소유를 실천했기 때문이오? 그렇게 산 사람은 그이 외에도 많소. 그의 글이 명문이기 때문이오? 그는 별로 뛰어난 글쟁이는 아니오. 문체만으로 볼 때는 아주 평범하오. 그가 위대한 사상가이기 때문이오? 아니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뛰어난 사상가는 아니오. 그런데도 그가 불교계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다는 사실은 그만이 풍기고 있는 어떤 정신적인 권위가 있기 때문일 거요. 나는 그를 가까이 대해보지 않았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것은 모르겠소.

 

어쨌든 지금 한국 개신교회는 법정의 무소유 사상 앞에서 다시 한 번 더 뭔가 딱한 처지가 되었소. 소유로부터 자유로웠던 그의 삶이 불교의 장점으로 드러날수록 개신교회의 소유 지향적 성격이 크게 부각된다는 말이오. 작년에 세상을 뜬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도 비슷하오. 그에게는 번듯한 자식도 없고, 집도 없었소. 수도승과 비슷하게 살았소. 그의 장례 후에 서울을 중심으로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하오. 개신교 지도자의 장례를 기점으로 기독교 신자가 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로 오늘 한국개신교회의 현주소가 아닐까 하오.(2010년 3월16일, 화요일, 빛, 바람, 찬 공기, 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