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 나라(14)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12. 06:48

'이제 우리는 교회의 권능에 대하여 말할 단계에 이르렀다. 하나님 나라의 사회적 타당성, 그리고 예수의 메시지에 놓인 하나님 나라의 중심적 위치, 또한 예수의 생애에 관한 모든 기독론적 진술에 놓인 하나님 나라의 중심적 역할 등을 상기해야 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현재의 정치적인 사회 형태들은 개인의 삶이나 공동의 삶에서 여전히 인간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만 교회의 존재가 정당화된다. 만일 현재의 사회구조가 잘된 것이라면 교회가 존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완전한 형태로 현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14)

 

그대는 지금의 정치, 경제, 또는 교육 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만족하시는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시는지.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만족이 불가능하니 상대적인 만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실 거요. 옳소이다. 우리가 여기서 경험하는 모든 삶의 형태들은 사람에게 완전한 만족을, 완전한 안식을 줄 수 없소이다. 이걸 전제할 때만 교회의 존재 이유가 성립하는 거라오.

 

판넨베르크는 내가 위에서 인용한 대목에 이어서 마르크시즘을 비판했소. 그는 마르크주의자들의 잘못을 이렇게 말하오. “그들의 잘못은 참된 인간주의적 사회 형태가 인간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는 환상을, 그리고 그것이 조속히 달성될 수 있다는 환상을 주장한다는 것이다.”(114) 그들은 그런 환상을 달성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도 허용했소. 지금 북한의 사회주의가 어떤 행태로 작동되는지를 눈여겨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거요. 판넨베르크는 기독교가 마르크시즘과는 다른 주장을 해야 한다고 말하오. “현재의 잠정적 현실 상황에서 그 어떤 인간 생활 행태라도 절대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성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인간성의 참된 조건이다.”(115)

 

오해는 마시구려. 사회주의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오. 그들의 휴머니즘은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 신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오. 다만 문제는 그것으로 완전한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오. 이런 잘못된 환상은 자본주의에서 더 극단적으로 표출되고 있소. 무한정의 자본 축적과 소유와 소비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환상 말이오. 오늘 한국교회는 이런 거짓 환상을 심어주는 일에 한 몫을 감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소? 잘 생각해보시구려.(2010년 3월12일, 금요일, 맑음,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