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370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말라(수21:43-45) / 리민수목사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말라(수21:43-45)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온전하게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는 단락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약속하신(창15장) 이후 약 690년이 지났지만 결코 당신의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고 다 이루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변개치 아니하시며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지만 한편 이제 이스라엘이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완전한 가나안 정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 삶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멈추지 말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누가복음13:34) / 이금환목사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누가복음13:34) 예루살렘은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있던 자들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 안에 있는 자들, 이미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이 말씀이 지칭하는 예루살렘에 포함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고, 그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말씀으로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 즉,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신 일이 "몇 번이냐"고 반문하시는 예수님은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교회 ..

주기도(34) / 정용섭목사

주기도는 구조적으로 볼 때 일용할 양식을 중심으로 앞에 세 항목이 나오고 뒤로 세 항목이 나오오. 앞의 세 항목은 하나님의 이름, 나라, 뜻이고, 뒤의 세 항목은 사죄, 시험, 악이오. 앞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있소. 일용할 양식은 더 구체적으로 사람의 것이오. 이런 주기도의 구조로 볼 때 기도는 우선 하나님이 드러나는 내용으로 시작해야 하오.      우리의 교회생활에서 이런 기도를 만나기는 쉽지 않소. 거의 모든 기도가 개인의 간구에 떨어져 있다는 말이오. 기도를 자기에게 소용되는 것들을 간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어떤 이들은 기도가 구체이어야 한다는 논리로 기도를 철부지 아이들의 떼쓰기로 떨어뜨리고 있소. 어떤 청년들은 결혼하고 싶은 상대의 ..

주기도(33) / 정용섭목사

-일용할 양식(3)-      일용할 양식과 관계된 두 번째 이야기는 성만찬이오. 어제는 오병이어에 대해서 말했소. 일용할 양식, 오병이어, 성만찬 이 세 가지 모두 먹는 이야기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먹는 이야기가 제법 많소. 심지어 예수님을 가리켜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는 평판도 있었다 하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그런 평판이 따라다녔다는 게 이상하지 않소? 이상할 게 하나도 없소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삶을 누리셨소. 다른 게 하나도 없었소. 그는 참 인간(vere homo)이셨소. 먹고 배설하는 행위가 없이는 인간이라 할 수 없소. 즐겁게 먹고 즐겁게 배설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오. 거룩은 세속과 완전히 분리된 세계가 아니오. 세속에서 거룩한 것이 나타나지 않..

주기도(32) / 정용섭목사

-일용할 양식(2)-      일용할 양식과 연관된 복음서 이야기는 두 가지요. 하나는 오병이어이고, 다른 하나는 성만찬이오. 오늘은 오병이어를 보겠소. 오병이어 사건은 너무 잘 알려진 탓에 여기서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성인만 5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요.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하고 묻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소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니 당연히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오. 예수님을 그렇게 보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생각이오. 하나님의 아들은, 즉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기적을 일으키지 않소. 다른 모든 장소와 사건에서는 만유인력이 적용되게 하면서 특정한 곳에서만 ..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립보서 3:12-14)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립보서 3:12-14)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날에 사도 바울의 인생 회고와 열정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우선 바울은 죄악된 과거를 완전히 잊으라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했다고 말합니다(6절). 바울은 당시 교회의 지도자였던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일에 적극 가담했고 성도들을 사로잡아 당국..

하나님 앞에서 살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 앞에서 살지 못하는 이유        글쓴이/봉민근삶이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지 못하는 이유는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을 하나님 보다 더 의식하며 살기 때문이다.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 보이는 사람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 문제다.하나님을 항상 후 순위에 두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진정한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다.교회에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성경책을 끼고 다닌다고 다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지 않는다.성경을 읽고도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기도의 자리에 있다고 모두가 영적인 눈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신앙이 성숙해 간다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다.믿..

부르심의 은혜에 합당한 진리의 파수꾼 (렘 26:1-15)

렘 26:1-15 묵상입니다. 언약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패역한 언약 백성을 향한 심판 선언입니다.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진리를 선포한 예레미야를 고소하는 종교지도자들.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패역과 교만이요,하나님을 입술로는 시인하나 마음은 떠난 위선입니다. 목숨을 걸고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거듭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라 외칩니다.부르심의 은혜에 합당한 진리의 파수꾼입니다. 심판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주님의 인자하심이 나의 죄와 허물을 덮습니다.하나님을 더 가까이하며 순종하게 하소서!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렘 26:1-15) / 방광덕목사

렘 26:1-15 묵상입니다. 가감없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시대를 불문하고 반발을 삽니다. 특히 기득권층에게.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예레미야를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의 조상답습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목숨을 걸지 않은 하나님 말씀은 들을 가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렘 26:1-15) / 방광덕목사

렘 26:1-15 묵상입니다. 가감없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시대를 불문하고 반발을 삽니다. 특히 기득권층에게.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예레미야를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의 조상답습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목숨을 걸지 않은 하나님 말씀은 들을 가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