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는 구조적으로 볼 때 일용할 양식을 중심으로 앞에 세 항목이 나오고 뒤로 세 항목이 나오오. 앞의 세 항목은 하나님의 이름, 나라, 뜻이고, 뒤의 세 항목은 사죄, 시험, 악이오. 앞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있소. 일용할 양식은 더 구체적으로 사람의 것이오. 이런 주기도의 구조로 볼 때 기도는 우선 하나님이 드러나는 내용으로 시작해야 하오.
우리의 교회생활에서 이런 기도를 만나기는 쉽지 않소. 거의 모든 기도가 개인의 간구에 떨어져 있다는 말이오. 기도를 자기에게 소용되는 것들을 간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어떤 이들은 기도가 구체이어야 한다는 논리로 기도를 철부지 아이들의 떼쓰기로 떨어뜨리고 있소. 어떤 청년들은 결혼하고 싶은 상대의 세세한 조건을 기도의 내용으로 삼고 있소. 결혼 정보 회사에 제출하는 서류와 똑같은 내용이오. 내가 직접 동영상으로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목사는 선교사들에게 원하는 승합차의 차종을 비롯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기도하라고 말했소. 차의 색깔까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거요. 그렇게 기도를 해야만 하나님이 더 빨리 응답하신다는 거요. 내가 보기에 그런 기도는 속임수요. 아무리 좋게 봐도 심리학에 불과하오.
그대의 기도 경험은 어떻소? 이것만은 분명하게 알아두시오. 말이 되든지 않든지, 기독교적이든지 사이비이단적이든지 일단 열정적으로 기도하면 나중에 기분이 좋아진다오. 초상집에 가서 실컷 울던 사람이 “누가 죽었는데?” 하는 것처럼 내용이 없어도 감정적으로 고조가 되면 일단 기분이 좋아지는 건 분명하오. 어떤 신자들은 목사의 설교에서 한 문장마다 매번 ‘아멘’이라고 화답하오. 그것도 자꾸 하다보면 기분이 좋아지오. 그대도 실험적으로 그렇게 기도해보시오. 35평짜리 아파트를 달라고 말이오. 위치와 아파트 이름도 거명하시오. 그대가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인테리어도 넣어 보시오. 그런 방식으로 기도할 내용은 많으니 몇 시간도 기도가 가능할 거요. 기도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대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했다는 사실이 기특하게 여겨질 것이오. 이런 방식으로 그대는 기도꾼이 될 수 있소.
그대는 “주기도와 영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당신의 기도생활은 어떤가?” 하고 질문하고 싶을 거요. 나의 지난 이야기는 하지 않겠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를 갔다면 사춘기 시절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을지 상상이 갈 거요. 목회를 하는 목사들은 거의 대부분 새벽기도회를 하오. 그게 목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되오. 샘터교회에는 새벽기도회가 없소. 혼자라도 새벽기도를 하는 게 목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경건생활이라고 생각하시오? 그럴 수도 있소. 나는 지금 새벽에 기도를 하지 않소. ‘지금’ 안 한다고 하니 언젠가 여건이 되면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되겠구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소. 언젠가 내가 수도원 원장이 된다면 아마 새벽 5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른 아침 기도회를 정기적으로 하게 될 거요. 수도원 원장이 내 꿈이오. 수도사들이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농사를 짓는 수도원의 책임자로 당분간이라고 살고 싶소. 이런 꿈은 이뤄지기가 어려울 거요. 당장 가족이 있으니 움직이기가 쉽지 않고, 나 같은 신학자 연 하는 사람을 수도원에서 받아주지 않을 거요. 지금 나는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건 없소. 밥 먹기 전에, 수시로 영적 감동이 올 때 잠시, 잠들기 전과 깨어난 후에 잠시 기도하오. 그것도 그렇게 뜨겁게 하는 게 아니라 거의 형식에 가깝소. 예배를 인도하거나 수요일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도 물론 기도하오. 그것도 짧은 시간이오. 이렇게 보면 나는 기도하지 않는 목사에 가깝소. 겉으로 보면 기도와 무관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으로는 늘 기도에 갈급하오. 시인이 막 되려고 하는 문학청년처럼 기도의 사람이 되고 싶은 거요. 잘 들으시오. 기도꾼이 아니라 기도 시인이 되고 싶은 거요.
지금까지 여러 책을 쓰고 번역했소. 앞으로 당분간 이런 작업을 계속될 거요. 가장 크게 마음을 두고 있는 분야는 두 가지요. 하나는 <365일 기도하기> 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목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요. 두 번째 책은 지금까지 다른 책에서 쓴 내용이 중심을 이룰 거요. 목사의 정체성에 대해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목회의 구체적인 현장에 대해서, 설교자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게 될 거요. 학문적인 차원보다는 내 영혼에서 진솔하게 피어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소. 정말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앞의 책이오. 이건 남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요. 내가 그분에게 귀를 여는 작업이자, 내 입을 여는 작업이기도 하오. 평소에 기도에 힘쓰지 않은 목사가 365일 동안 기도문을 쓸 수 있겠소? 상투적인 소리가 아닌 영혼의 소리로 기도하려면 뭔가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야만 하오. 지금은 여러 가지 일들이 내 영혼을 긴장시키고 있어서 참된 기도를 드리기 힘드오. 환갑이 되기 전에 이 일을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도하지 못한 책임을 진다는 심정으로 한번 시도해 보겠소. 응원을 부탁하오.(2010년 8월22일, 주일, 가장 더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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