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주기도(32)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7. 1. 06:03

-일용할 양식(2)-

 

     일용할 양식과 연관된 복음서 이야기는 두 가지요. 하나는 오병이어이고, 다른 하나는 성만찬이오. 오늘은 오병이어를 보겠소. 오병이어 사건은 너무 잘 알려진 탓에 여기서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성인만 5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요.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하고 묻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소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니 당연히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오. 예수님을 그렇게 보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생각이오. 하나님의 아들은, 즉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기적을 일으키지 않소. 다른 모든 장소와 사건에서는 만유인력이 적용되게 하면서 특정한 곳에서만 만유인력을 제거하지는 않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암으로 죽게 하면서 특별한 사람만 치료하지도 않소. 우리는 오병이어 사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하오. 그건 안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성서의 메시지를 따라가는데 핵심은 아니오. 이렇게 추정할 수는 있소. 광야로 나온 사람들이 각기 제 먹을 것을 가져온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요. 그걸 숨기고 있다가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기도한 뒤에 모두 꺼내놓고 먹은 것일 수도 있소. 아니면 오병이어로 모두 한 조각씩만 나눠먹었지만 영적으로 배가 부른 탓에 육체도 배가 부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소. 어쨌든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일용할 양식 문제까지 해결되는 나라라는 뜻이오. 거기서 예수가 중심이오. 예수는 바로 하나님 나라 자체였으니 말이오.

 

     오병이어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종자) 씨앗과 같소. 그것만 있으면 최소한 생존에 필요한 먹을거리는 해결되는 것이오. 씨앗을 보시오. 옥수수 알 하나를 심으면 수백 개의 알이 생긴다오. 한 사람의 먹을거리로 수백 명의 먹을거리가 생산된다니, 얼마나 놀랍소. 요즘 복숭아가 한창이오. 복숭아나무 한 그루에도 최소한 100개 이상의 열매가 달릴 거요. 복숭아나무는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열매를 맺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지구와 우주로부터 오는 거요. 지구의 생명 메커니즘은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소. 오병이어를 다른 데서 찾지 말고 지구 생명 현상에서 찾도록 하시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행위라오. 오병이어 사건은 일상적으로 늘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오. 그것으로 인류는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소. 이것만은 장담할 수 있소.

 

     문제는 모두 숨겨두고 내놓지는 않는다는 데에 있소.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 부를 재분배하자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시장 자체의 메커니즘에 맡겨두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요. 지금의 추세는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소. 북유럽은 중간 쯤 되는 노선에서 복지에 신경을 쓰고 있소. 이런 문제는 아주 정교한 정치 경제에 속한 것이기에 내가 더 이상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소. 속 시원한 대답이 없어서 뭣 하지만 이 정도로 정리하고, 성서와 신학의 관점에서 한 가지만 보충하겠소.

 

     신약의 오병이어는 구약의 만나 사건과 깊이 연결되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기근에 봉착할 후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먹을 수 있었다 하오. 그 사건도 역시 오병이어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곤란하오. 그 본문에 대한 역사 비평 역시 여기서 생략하겠소. 그 전승의 핵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존을 책임지신다는 신학적 고백이오. 생존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오. 하나님 나라와 거의 의를 구하면 그 이외의 것을 더 주신다는 주님의 가르침도 여기에 해당되오. 만나를 가져올 때 딱 하루치만 가져와야 했소. 욕심을 내서 이틀 치를 가져오면 그 다음날 그것이 상해버렸다 하오. 모두 하루치의 만나(일용할 양식)에만 관심을 두면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소. 이런 일들이 재산을 그 사람의 능력으로, 그 사람의 정체로 간주하는 오늘과 같은 세상에서도 가능하겠소? 교회만이라도 하루치만의 만나에 집중하는 삶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소? 그게 오늘 교회에 주어진 선교 사명이라오. (2010년 8월20일, 금, 여전한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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