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주기도(29)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6. 30. 07:10

-당신의 뜻(2)-

 

     지금 우리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주기도의 내용을 함께 생각하고 있소. 솔직하게 말하시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하겠소? 이런 질문이 이것 자체로는 그렇게 명확한 게 아니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오. 아니 내 뜻은 우리가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못하오. 여기 수능을 앞 둔 학생이 있소. 그는 좋은 점수를 받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소. 그게 자신의 뜻이오. 그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아서 좋은 대학교에 가면 대신 다른 학생은 들어가지 못할 수 있소. 어떤 게 하나님이 뜻이오? 이 학생이 자기보다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더 좋은 점수를 얻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소? 이건 개인의 문제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국가 사이의 문제는 정말 심각한 거요. 전쟁을 하는 두 나라가 있소. 각각 승리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소.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오?

 

     이것은 단지 기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이기도 하오. 어떻소? 오늘 우리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시오. 대개는 자기의 뜻을 이루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할 거요. “청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지라!”는 슬로건에서도 그걸 확인할 수 있소. 야망 성취를 재미있는 삶으로 느끼고 있소. 내 뜻이 이루어졌을 때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의 기분이 어떤지 살펴보시오. 목사들은 자신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지만 실제 목회 현장에서는 자기의 뜻을 목회에 적용시키는 일이 많소. 그건 그 사람의 인격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혼동하기 때문에 벌어지오.

 

    이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니 좀더 꼼꼼히 생각해보시오. 내 뜻을 이루어갈 때 기분은 좋겠지만 그것으로 사람이 참된 만족을 얻을 수는 없소. 자기가 원하는 정도로 돈을 벌고 사회 지위를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오. 이건 틀림없소. 그대는 다르게 생각하시오? 그런 말은 이미 많은 것을 얻은 사람에게만 설득력이 있지 궁핍한 사람에게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거요? 아니라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거나 우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허투루 듣지 마시오. 그 말씀은 공자 왈의 가르침이 아니고, 심리적으로 위로를 주자는 것이 아니요. 삶의 현실이 거기에 있소.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도 이해하시구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생각이 더 절실해지오. 어떤 것을 성취하려는 열망보다는 그런 것에 대한 모든 욕망이 철저하게 제어되는 상태로 가고 싶은 거요. 내가 테니스를 즐긴다는 걸 그대도 알고 있을 거요. 그것이 즐겁지 않은 상태로 가고 싶다는 거요. 내가 건강의 문제로 테니스를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아쉬울 게 하나도 없소. 하루에 밥을 한 끼만 먹게 된다고 해도 괜찮소. 팔복에 나오는 ‘가난’은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오. 그 상태가 복이 있는 이유는 더 궁극적인 것에 영혼이 기울어지기 때문이오.

 

     위의 말을 개인적인 간구가 필요 없다는 말로 듣지 않기를 바라오. 큰 병에 걸렸을 때 낫기를 기도하는 건 당연하오. 예수님도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고 가능하면 그걸 피하고 싶다고 기도하셨소. 문제의 핵심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오. 그것이 쉽지 않겠지만 결국 거기에서만 우리는 구원을 경험할 수 있소. 하나님 안이 아니면 그 어디서도 영혼의 참된 안식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대가 이 세상살이에서 온갖 문제로 힘들고 골치 아프겠지만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에 삶과 기도의 무게를 두도록 하시오. 그럴 때 우리는 외식하는 기도나,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것이오.(2010년 8월17일, 화, 기분 좋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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