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주기도(26)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6. 29. 07:10

-당신의 나라(6)-

 

     어떻소?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상이 그에게 넓어졌소? 또렷해졌소? 그렇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는 마시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오. 구원과는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영성과는 연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그림 감상과 비교해보시오. 윌리엄 터너의 그림 <Snowstorm>이 우리 앞에 있다고 생각하시오. 터너의 그림세계를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 중에서 누가 이 그림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겠소? 물론 전이해가 없다 해도 직관력만 있으면 그림을 이해할 것이오. 그러나 직관만 갖고는 충분하지 않소. 그리고 그런 직관력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나 주어지는 거요. 또는 직관력 자체도 공부를 통해서 확대되는 거요. 신학공부도 예술, 시, 음악공부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세계로 들어가는 훈련이오. 말이 옆으로 흘렀소. 그대에게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고, 거기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오? 다른 글에서도 이미 언급한 것이지만 두 가지 관점으로 정리하겠소. 그것이 그대에게 얼마나 리얼하게 들리는지 느껴보시오.

 

     첫째, 하나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통치 개념이오. 소유가 아니라 존재 개념이라는 말과 비슷하오. 어떤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지금 우리가 여기서 경험하고 있는 시공간의 차원에 있는 그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소. 심지어 우주 공간 어디를 그 나라라고 생각하기도 하오. ‘나라’가 공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오. 공간이 없는 빈 허공을 하나님 나라라고 말할 수도 없소. 이 문제는 시간과 공간의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소. 다만 하나님 나라를 지나치게 공간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교정해야 한다는 뜻이오. 유대인과 헬라인의 세계 이해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것이 이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소. 구약이 말하는 세상은 주로 ‘에온’이오. 에온은 시간적인 차원으로의 세상이오. 유대인들은 세상을 시간의 차원으로 보았다는 뜻이오. 반면에 헬라인은 세상을 ‘코스모스’라고 생각했소. 코스모스는 공간적인 의미가 강하오. 에온은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입장이고, 코스모스는 동일한 세상이 환원된다는 입장이오. 하나님 나라는 당연히 공간적 차원의 코스모스가 아니라 시간적 차원의 에온과 연결되오. 루터는 예수님이 지옥에 계시다면 자기는 지옥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하오. 하나님 나라는 천당이나 지옥이라는 장소라기보다는 예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뜻이오.

 

     둘째, 하나님 나라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관계에 있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소.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온 것이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여기에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오. 어떤 이들은 그 하나님 나라를 교회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정확한 말이 아니오.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징표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나라는 아니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겠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절) 지금 살아있는 동안에 이미 영생을 얻었다는 말씀을 이해하려면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해야만 하오. 생명은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인 것이오. 종말에 일어날 부활생명이 지금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주어졌다는 뜻이오. 지금과 종말이 믿음으로 일치가 된 것이오. 종말의 생명이 약속으로 이미 주어졌지만 실증적으로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오. 하나님 나라는 ‘이미’와 ‘아직’의 변증법적 긴장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 통치를 가리키오.

 

     주기도는 바로 그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바란다고 했소.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는 걸 그대는 이미 알고 있을 거요. 이미 일어났으나 아직은 아닌 그 하나님의 통치를 우리가 어떻게 일으킬 수 있겠소. 이런 점에서 믿는 사람들이 도덕적 주도권을 확보하거나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워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자는 주장은 잘못이오. 그건 우리가 간구해야 할 내용이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도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처럼 말이오. “나라가 임하시오며...” (2010년 8월14일, 토, 잔뜩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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