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3 14

선의와 오해(수22:10-20) / 리민수목사

선의와 오해(수22:10-20)  본문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치고 돌아가던 요단 동편 두 지파 반 용사들은 요단 강가에 이르러 거기에 큰 단을 쌓음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다.  그들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해 주신 사실을 기념하고 자신들도 요단 서편의 지파와 동일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증거하기 위해 큰 단을 쌓은 것이다.  하지만 요단 강가에 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들은 요단 서편 지파 사람들이 오해하고 분개하여 그들과 싸우기 위해 실로에 모였다. 그러나 요단 서편 지파들은 그들의 행동을 우상 숭배 행위로 오해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처럼 오해는 무서운 의심을 낳는다. 성도 역시 오해의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매사에 신중해야 할 이유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8:4-6) / 이금환목사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사도행전8:4-6)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시고, 오순절 성령을 보내주셔서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졌는데 그 교회가 큰 박해로 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그렇게 흩어진 성도들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그 중에 빌립집사님도 있었는데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속한 각 교회에는 아주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직분을 받은 것은 교회가 충분히 신앙의 성숙과 헌신과 영적 성품을 고려하여 기도하며 세웠을 것입니다. 어떤 직분을 받았던지..

그는 누군가?(막 4:35-41)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5주, 2024년 6월 23일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께서 출가 이후 아주 짧았던 공생애를 보내면서 주로 활동한 지역은 갈릴리 호수의 어촌 마을인 가버나움과 사해 인근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까지 성지 순례를 다녀온 이야기가 복음서에 나옵니다. 구글 지도에서 확인해보면, 두 곳의 거리는 대략 160여 킬로미터로 천천히 걸으면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던 몇몇 청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제자만 해도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입니다. 막 4:1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배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날이 저물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

다시 마음의 옷깃을 여밉니다.

제법 서늘한 바람이 열린 창으로 들어와 나의 폐부 깊이로 들어옵니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선물로 주어진 오늘을 마음으로 받아누립니다. 살아있음이 신비이고 소망의 길을 가고 있음이 신비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가 나를 다시 깨우고 있습니다. 다시 마음의 옷깃을 여밉니다. 이러한 신비에 마음을 두지만 일상의 삶의 무게가 그러한 마음에 돌을 던집니다. 작은 흔들림이 계속되다가 어느 때는 중심을 잃게 하는 큰 풍랑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다르지 않다 합니다. 다만 그 풍랑을 어떠한 마음으로 대하며 그 풍랑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어떻게 나의 성숙을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아침을 맞아 성도님을 기억..

주기도(40) / 정용섭목사

-시험(4)-     다음 질문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한다고 할 때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하는 거요. 기도를 방법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오. 물론 방법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오. 한국교회는 지금 기도 인플레이션에 떨어져 있소. 그것이 모두 방법론의 차원에서 머물러 있다는 증거요.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느냐에 목숨을 거오. 기도가 습관이 되었소. 커피 한 잔을 놓고도 기도하오. 목회 중에 심방이라는 게 있소. 일단 어느 신자의 집에 가면 예배를 드리오. 원칙적으로 말하면 이건 예배라기보다는 기도회라고 하는 게 옳소. 편의상 가정예배라고 합시다. 대표기도, 설교 후 기도, 주기도나 축복기도를 하오. 다과를 먹기 전에 또 기도하오. 좋은 기도습관은 필요하지만 기도의 상투성..

주기도(39) / 정용섭목사

-시험(3)-      이제 우리의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시험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시험을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는 없소. 시험은 교회에서도, 수도원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오. 또 시험이 반드시 나쁜 결과만 일으키지도 않소. 우리를 단련시키는 시험도 있소. 마귀는 우리를 파괴하려고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시험하오. 시험을 완전히 마귀의 것과 하나님의 것으로 이원론적인 차원에서 분리할 수는 없소.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험이 하나님과 연결되오. 그러나 마귀가 주도적으로 시도하는 시험은 있는 거요. 그것마저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소. 반복되는 말이지만 그것을 구분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소. 그래서 성서..

주기도(38) / 정용섭목사

-시험(2)-         시험에 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하시오. 앞에서는 시험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질문을 했소. 마귀, 또는 사탄이 주체적으로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오. 이제는 시험의 내용에 대한 질문이오. 시험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오. 우리는 시험을 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시험을 하오. 시험은 이 양면성을 그래도 갖고 있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바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시험의 본질이 아니겠소? 욥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해보시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분명히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재앙을 만났다고 윽박질렀소. 그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이오. 욥은 재앙을 당할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반론을 폈소. 하나님이 누구냐, 그의 섭리는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

누가 제사장인가?(창 49:1-28) / 김영봉목사

해설: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의 기도를 한 다음,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불러 하나씩 기도해 줍니다(1-2절). 야곱은 “너희가 뒷날에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다”고 말합니다. 그의 기도는 예언적인 축복 기도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이 장자권을 상실한 이유를 밝힙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을 범한 일 때문에 장자권을 상실했고(3-4절), 시므온과 레위는 누이 다말의 일로 인해 세겜 사람들을 살륙한 것 때문에 장자권을 이어 받지 못합니다(5-7절).  유다에 대한 기도는 축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8-12절). 야곱은 장자권이 유다에게 옮겨질 것이며 그 후손에서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난 일들을 마음에 두..

갈등을 해결하는 균형의 열쇠(전도서 7:16-18)

갈등을 해결하는 균형의 열쇠(전도서 7:16-18)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일하며 살아갈 때 갈등을 겪거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한쪽으로 치우쳐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갈등의 해결을 위해 꺼낼 열쇠는 바로 균형입니다. 물론 이 균형은 완전한 평형이나 기계적인 평형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사람을 보면 계속 좌우로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잡습니다. 균형을 잡아나가기 위한 시행착오도 ..

선지자와 권력자의 갈등(렘 26:16-24) / 신동식목사

예레미야의 경고에 대하여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를 죽여야 한다는 측과 선지자를 살려야 한다는 측입니다. 둘 다 논리가 있습니다. 해가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을 남겨야 하는 이유는 없다는 것과 옳은 말은 쓰더라도 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예레미야를 살려야 한다는 측은 히스기야 왕의 시대를 예를 듭니다. 당시의 미가 선지자의 쓴 말에 히스기야 왕은 겸허이 듣고 벌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그러나 또 한명의 선지자인 기럇여아림 출신의 우리야입니다. 우리야 역시 같은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야김과 고위 공직자들은 우리야를 죽이고자 합니다. 우리야는 애굽으로 피신 하였지만 결국 잡혀와서 죽임을 당하고 평민의 무덤에 묻혔습니다.두 사이에 있는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도와줌으로 일단 죽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