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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축귀 능력 (막 6:1-13) / 정용섭목사

성령강림 후 7주, 2024년 7월 7일  오늘 설교 본문 첫째 단락인 막 6:1-6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 인근에서 활동하다가 고향 나사렛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몇 년 만에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동행했습니다. 안식일이 되자 경건한 유대인들이 늘 그렇듯이 예수님 일행은 회당을 찾았습니다. 요즘 식으로 바꾸면 고향을 떠났던 어떤 목사가 오랜만에 고향 교회 예배에 참석한 겁니다. 예수께서는 랍비처럼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놀라워했습니다. 이미 예수에 관한 소문을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겠지요. 그들의 반응이 예상외입니다. 예수님을 반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3절이 이 사실을 이렇게 전합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

카테고리 없음 2024.07.13

설교공부에 대해(1) / 정용섭목사

9월12일 자로 알림판 메뉴에 올린 ‘설교공부모임’ 꼭지 글을 그대도 읽었을 것이오. 혹시 궁금한 게 있소? 사실 설교를 주제로 하는 모임은 목회자들 세계에서 흔한 거요. 이미 신학교에 다닐 때부터 설교학을 공부하고, 목회 현장에서도 설교 세미나를 접할 기회는 많소. 그런 모임에 쫓아다니기가 귀찮을 정도로 널리고 널린 게 설교공부 모임이오. 이런 마당에 내가 또 다른 모임을 준비하는 이유가 뭐요? 이전의 모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번 모임이 전혀 새로워야만 말이 되는데, 이 두 가지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소. 이전의 모임이 어떤 성격인지는 대충 감을 잡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모임에 참가해보지 않아서 내가 말할 입장이 안 되고, 이번 모임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새롭게 비칠지도 아직은 시작하지 않았으니 단..

<복음과 상황> / 정용섭목사

한국에도 기독교 잡지가 꽤 되오. 내가 그쪽으로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정확한 정보를 줄 수는 없소. 대략적인 것만 말하리다. 우선 각 교단에서 나오는 잡지가 있소. 우리나라에는 교단도 많으니 당연히 잡지도 많소. 어떤 데서는 월간지로, 다른 데서는 격월간지로 나오오. 감리교회의 격월간지 에 나는 금년 한 해 동안 6편의 원고를 기고했소. 초교단적인 배경의 잡지도 제법 되오. 가장 전통이 오래된 잡지는 이오. 수년 전에 거 잡지에 내 졸고가 4년 가까이 연재되었소. 실명 설교비평이오. 그 시절은 내 글쓰기의 황금기면서 육체적으로 고단한 시절이었소. 그 후유증으로 위장이 나빠졌는데, 연재를 그만두고 천천히 좋아졌소만 아직도 완전하지는 않소. 은 두란노에서 나오는 잡지인데, 아마 목회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힐 ..

청소를 하며... / 정용섭목사

그대는 집안 청소를 자주 하시오? 그리고 깨끗이 하시오? 나는 청소에 게으르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는데, 대충 하오. 집안이 좀 지저분해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소. 물론 집안을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치우면 기분이 좋긴 하겠지만, 그것도 따지고 별 거 아니오. 깨끗하다거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다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겠소? 지금 우리는 너무 깨끗한 게 오히려 탈인 것 같소. 어느 정도는 흐트러진 공간에서 먼지와 함께 사는 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오.      내가 오늘 그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쓰레기가 너무 많이 배출된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오. 오늘도 집안 청소를 하면서 역시 느낀 거지만, 우리는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버리면서 살고 있소. 이건 아닌데 하는 ..

마음이 흩어짐으로 섬김의 기쁨과 잃은 마르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라도 좋으니라“(눅10:41,42)  예수님의 발치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과 예수님의 일행을 위해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는 것. 경청하는 마음과 섬김의 손길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마음이 흩어짐으로 섬김의 기쁨과 잃은 마르다. 사랑을 잃은 자리에 불평과 질시가 들어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뻐함이 지복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경배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만이 알짬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딤후1:9) / 이금환목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디모데후서1:9) 굳이 만들어진 겸손, 억지로 그런 척하는 겸손이 아니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살피면 자신의 행위와 삶이 결코 의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코 의롭지도 않고, 구원받을만 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설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부르시고, 자녀 삼으시고, 거룩한 일꾼을 삼으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에 대하여 일체를 참으시고, 우리 연약함에 대하여 그냥 은혜로 지나가주시고, 끊임없이 용서해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

강용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자족하는 마음이 행복입니다.’ / 한재욱목사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오늘은 강용수 교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중 ‘시계추 이야기’를 하나님께 드리며 ‘자족하는 마음이 행복입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다.”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경구입니다. 여기서 ‘고통’이란 단어는 ‘괴로움’ 혹은 ‘욕망’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인간은 브레이크가 없이 무한질주하는 욕망 때문에 괴롭습니다. 이 세상은 나의 욕망을 호락호락 쉽게 이루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차여차하여 그 욕망을 이룬다 해도 행복이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곧 ‘권태’가 오기에 그러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그토록 욕망해서 얻었다가 곧 싫증을 느끼고 또 ..

마음에 기록된 새 언약 (렘 31:23-40) / 신동식목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회복됨을 말씀합니다. 한때 조롱거리가 되었고, 황폐하게 되었던 이스라엘이 다시금 의로운 처소, 거룩한 산으로 회복됨을 말씀합니다.농부와 양떼를 인도하는 자`가 유다에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십니다. 즉 포로 생활 가운데 오랫 동안 슬픔으로 지내왔던 자들이 이제는 넘치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선지자는 이 약속을 듣자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깨어보니 잠이 달다고 고백합니다. 악몽이 아닙니다. 길몽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멋진 선물입니다.하나님은 이어서 또 약속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고 번영할 것이라 약속입니다. 이전의 아픔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선조들의 죄로 인하여 후손들이 아픔..

말씀에 줄긋고 살기

말씀에 줄긋고 살기  글쓴이/ 봉민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확신하며 사는 자들이다.자신의 삶이 은혜 아래 놓였다는 것을 시인하며 사는 것이 신앙이다.신실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자신을 두기를 소망하며 산다.그것이 믿음이다.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자신을 말씀 안으로 엮어 넣는 작업이 곧  신앙생활이다.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삶과 말씀의 일치가 필요하다. 학교 다닐 때 같은 것 끼리 줄을 긋는 시험이 있다.비슷한 것은 틀린 것이다.엉뚱한 것은 오답이다.같은 것만 답이다.나의 삶을 말씀과 일치되는 것에 줄을 그어 나의 신앙을 채점한다면 아마도 나의 신앙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다.내 생각이 맞는지 말씀에 줄 긋고 말씀이 내 삶에 일치되게 살아야 한다.믿음은 가..

'소통'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

'소통'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 충청도 사람들은 '가셨습니다'를 '갔슈','괜찮습니다'를 '됐슈'로 줄여서말하곤 합니다.어느 날 충청도의 시골 이발소에한 미국인 남자가 들어왔는데 이발소 주인아저씨는그 남자에게 인사했습니다."왔슈?"충청도 말로 '오셔서 반갑습니다'라는 뜻이었는데미국인 남자는 이발소 주인아저씨의 말을'What see you?(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로착각해 들었습니다.미국인 남자는 비록 조동사 'do'가 빠지긴 했지만시골 아저씨 치고 그 정도면 제법 훌륭한영어 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남자의 앞에는 이발소의 큰 거울이 보였습니다.그는 문장이 길어지면 주인아저씨가 알아듣지 못할까 싶어딱 한 마디로만 대답했습니다."mirror(거울)"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남자가 의자에 앉자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