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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마가복음9:22-24) 예수님께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제자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어서 귀신을 내쫒지 못한 제자들을 꾸짖고, 아이에 대해서 묻자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 예수..

카테고리 없음 2024.07.14

세속의 압력을 이기는 길 / 신동식목사

세속의 압력을 이기는 길 신학교 시절에 아주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매일 통학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성수대교가 있었습니다. 그날도 피곤한 상태로 버스를 타고 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버스는 성수대교를 지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방금 지나온 성수대교가 중간에 다리가 끊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차에 탔던 모든 학생은 놀란 가슴을 안고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늘 다니던 다리가 끊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다양한 분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종 발표는 오래된 다리였기에 많은 차량의 힘을 견디지 못하여 무너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다리의 붕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단단학 보여도 압력을 이기지 못하..

급한 하루와 소중한 하루! / 정용섭목사

그대는 오늘 하루 뭐 하며 지냈소? 공장에 나가서 일했을 수도 있고, 학교에 가서 배우거나 가르칠 수도 있고, 직장을 구하려고 알아보는 중인지도 모르고, 달콤한 연애를 했는지도 모르겠소. 대박을 꿈꾸면서 사업을 구상하거나 매출을 올리려고 부하 직원들을 닦달했을 수도 있소. 가정에서 청소하고, 아이 보고, 밥 하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르오. 다 각각의 하루였소. 그런 하루가 쌓여서 한 달이 되고, 그런 한 달이 쌓여서 일 년, 그런 일 년이 쌓여서 한 평생이 되오. 그렇다면 결국 하루의 일상이 한 평생이라는 말이 되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대가 눈치를 챘을 거요. 만약 오늘 하루가 내 인생 전체였다고 하더라도 오늘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지냈을지 생각해보시오. 대다수는 아니라고 생..

설교공부에 대해(3) / 정용섭목사

지난 주일에 서울샘터교회를 방문한 어떤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소. 그분은 오랫동안 다비아 사이트의 회원이셨소. 그분이 하는 말이 정 목사는 설교를 진행하면서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 질문이 바로 자기가 하고 싶었던 거라서 설교에 관심이 간다는 거요. 일반 신자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나에게는 놀라웠소. 질문보다는 정답을 원하는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신앙행태와 달랐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내 설교의 핵심을 잡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소. 나는 설교자가 답을 주기보다는 청중들을 성서텍스트의 세계 안으로 안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안으로 들어오려면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하오. 성서텍스트는 답이 아니라 질문이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답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질문을 안고 있소. 설교자는 마치 숨..

설교공부에 대해(2) / 정용섭목사

앞서의 글에서 설교는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소. 그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소. 공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로 들리면 곤란하오. 설교 공부가 왜 필요 없겠소. 다만 그것을 기술이나 방법론의 문제로 여기지 말라는 뜻이었소. 설교만이 아니오. 모든 공부는 ‘지시하는’ 진리에 영혼을 여는 일이오. 진리가 지시한다는 말은 진리 자체가 가르친다는 뜻이기도 하고, 진리가 계시된다는 뜻이기도 하오. 성서텍스트 자체가 말을 한다는 뜻이오. 설교자의 첫 걸음은 바로 성서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오.      그대는 설교를 하는 사람이오, 아니면 설교를 듣는 사람이오? 어느 쪽이든지 오늘 성서텍스트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설교자들이 드물다는 것은 인정하실 거요. 오늘 한국교회 강단에서 창조적인 설교를 찾아보기 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갈 2:15-21) / 김영봉목사

해설:15절과 16절은 바울이 갈라디아 신도들에게 하는 말 같지만, 문맥 상 바울이 베드로에게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과 게바 그리고 다른 유대인 신도들을 가리킨다. 15절에서 바울은 “게바여,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16절에서 유대인 신도들이  공유하고 있던 믿음에 대해 설명한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율법을 지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중요한 개념이 나온다. 하나는 “의롭다고 하다”(16절)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헬라어 ‘디카이오오’의 번역으로서 재판장이 피고에게 무죄를 선언하는 행위를 가리..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렘 32:1-15) / 신동식목사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10년, 느부갓네살 18년 예루살렘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때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무너질 것을 예언합니다. 그러자 시드기야 왕은 부정적 예언을 한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둡니다.감옥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외서 아나돗에 있는 땅을 사라고 제안합니다. 예레미야의 입장에서는 의미없는 일입니다. 나라가 망할 것이고 70년을 피난민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나돗의 땅을 사는 것은 무의미합니다.이에 예레미야는 은 칠십 세겔을 주고 땅을 삽니다. 그리고 바룩에게 매매 증서를 체결하게 합니다. 그런 후에 매매증서를 항아리에 봉인하여 오랫동안 봉인하게 합니다. 하..

믿음으로만 말할 수 있는 사람

믿음으로만 말할 수 있는 사람        글쓴이/봉민근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믿음으로만 말할 수가 있다.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기를 바라면 안 된다.내가 원하는 대로만 된다면 그것은 내가 신이 되는 것이다.세상은 전능자의 손 아래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며 사는 것이 믿음이다.하나님은 인간의 시녀가 아니다.내 뜻대로 되기만을 원하는 것은 나의 욕심이요 그 결과는 죄를 불러온다.내 삶이 흔들리는 것은 세상이 흔들려서가 아니라내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믿음이 견고한 사람은 세상 환경에 자신의 신앙이 좌우되지 않는다.신앙의 기초는 믿음이다.믿음의 시선을 하나님께 분명히 두고 살아야 한다.믿음이 분명하면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되고 해석하게 되어 있다.우리가 무슨 재..

목표가 없는 삶

목표가 없는 삶'닭'이라고 하면 흔히 '닭대가리'라는비속어를 떠올리곤 하지만 실제 닭의 지능은그렇게 낮지 않습니다.닭은 다른 새들에 비해 몸집도 큰 편이고무려 30여 가지 울음소리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시력도 맹금류에 버금가는 좋은 시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자신 주위에 있는 물체들을 거의 360도 각도까지 보며100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모습을 구분할 정도로조류 중에서도 우월한 능력을 지닌 새입니다.그러나 닭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새임에도 불구하고 새처럼 높게 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닭은 튼튼하고 커다란 날개를 갖고 있지만높이 날려고 하지 않습니다.사람의 손에 길러지고 가축화되면서편하게 먹고살기로 작정한 이후부터 날갯짓을멈춰버린 것입니다.그에 반해 호박벌은 몸집에 비해 너무나작은 날개를 갖고..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 (렘 32:16-25)

렘 32:16-25 묵상입니다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기도하는 예레미야.먼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공의를 찬양하며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언약 백성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친히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에 신실하십니다.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고 불순종한 언약 백성들.언약 백성이지만 순종의 믿음이 없습니다.하나님의 슬픔이요 예레미야의 탄식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앞에 절망하게 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인자는 허물보다 큽니다.믿음과 기도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