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압력을 이기는 길
신학교 시절에 아주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매일 통학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성수대교가 있었습니다. 그날도 피곤한 상태로 버스를 타고 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버스는 성수대교를 지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방금 지나온 성수대교가 중간에 다리가 끊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차에 탔던 모든 학생은 놀란 가슴을 안고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늘 다니던 다리가 끊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다양한 분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종 발표는 오래된 다리였기에 많은 차량의 힘을 견디지 못하여 무너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다리의 붕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단단학 보여도 압력을 이기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후에 성수대교는 복원되었습니다. 강한 압력도 견딜 수 있도록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1994년보다도 더 많은 차량이 다니고 있지만 문제가 없습니다. 그만큼 압력을 이길 수 있게끔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압력의 문제는 다리만이 아닙니다. 신앙과 세계관의 모습에서도 나타납니다. 신앙도 다양한 시험의 압력을 받습니다. 성숙한 신앙, 견고한 믿음이라는 말은 다양한 시험의 강도를 이길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시험과 유혹과 고난이 없는 삶이 없듯이 신앙도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자가 다 시험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시험에 넘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시험을 이겨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의 견고함 때문입니다. 성경은 견고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견고한 신앙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시험과 고난을 이겨내는 견고함이 중요합니다.
견고함은 세계관에도 중요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이 견고하지 않으면 세속적 세계관의 도전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거세게 압박하여 오는 세계관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세계관의 전쟁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구에서 수비하는 팀이 전방 압박을 하면 공격하는 팀이 당황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있는 팀은 전방 압박을 이겨냅니다. 그러면 공격을 아주 쉽게 풀어 갈 수 있습니다. 압박을 이겨내는 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세속적 세계관을 이겨내는 것이 참된 진짜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압력을 이기려면 확고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그 무엇과도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떠한 압력에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 세계관의 근거가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성경적 세계관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이 터 위에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이어지는 견고한 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우리 사회는 경제적 압력, 전쟁의 압력, 기후 위기의 압력, UN이라는 다수 독재의 압력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현실을 보면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주도권자는 정치권력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압력을 이기기 위하여 정치권력에게 자유를 맡깁니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쉐퍼의 표현처럼 개인적 평안과 풍요라는 빈약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빈약한 가치로는 사회적 압력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결국 자의적인 정치권력자들과 전문가 엘리트들의 조작에 모든 자유를 헌납하게 됩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소유하지 않은 세상, 기독교적 합의가 없는 세상은 오직 개인의 평안과 풍요를 채우는 데 모든것을 소비합니다. 빈약한 가치는 지속적 삶을 유지할 수 없고 모든 자유를 빼앗깁니다. 자유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몸은 자유이지만 감옥에 사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창살 없는 감옥이 현대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가치에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이 가치이고 기반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세계관이 있기에 자유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독재와 정치적 독재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문화적 독재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합의를 해체하려는 세력과 싸울 수 있습니다. 공인된 다수 독재에 대하여도 대항할 수 있습니다.
압력을 이기는 길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할 뿐 아니라 삶에서 세계관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손봉호 장로는 성경적 세계관을 전파하였고, 가르쳤으며 실제로 살았습니다. 나눠주기를 기뻐하였던 손봉호장로는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하였고 밀알 장애인 재단에 13억원의 재산을 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재산이 말라위의 어려운 이들을 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손봉호 장로의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견고한 삶은 세속적 압력을 이기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압력을 이길 때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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