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갈 2:15-21)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7. 14. 06:12

해설:

15절과 16절은 바울이 갈라디아 신도들에게 하는 말 같지만, 문맥 상 바울이 베드로에게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과 게바 그리고 다른 유대인 신도들을 가리킨다. 15절에서 바울은 “게바여,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16절에서 유대인 신도들이  공유하고 있던 믿음에 대해 설명한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율법을 지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중요한 개념이 나온다. 하나는 “의롭다고 하다”(16절)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헬라어 ‘디카이오오’의 번역으로서 재판장이 피고에게 무죄를 선언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죄가 있는데도 죄 없다고 선언하는 재판장은 의롭다 할 수 없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음에도 의롭다고 인정하는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고 죽으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분 안에서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

 

다른 하나는 “믿는다”라는 표현이다. 헬라어 ‘피스티스’는 “믿음”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신실함”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새번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번역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신실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셨고 그로 인해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과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인격적 의뢰가 합해져서 완성된다.

 

17절은 게바의 행동을 두고 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려 한다면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 율법을 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무효로 만드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은 허물어졌다. 게바의 위선적인 행위는 허물어진 율법을 다시 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18절). 

 

사도는 자신이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19절)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원리에 따라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도 율법의 정죄에 따라 죽음을 당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살아난다.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분과 함께 새 사람으로 부활하기 때문이다.  

 

20절의 첫 문장 즉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는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의 “나”는 십자가에 달려 죽고 장사 지낸 옛 사람을 말한다. 육신적인 면에서 전과 달라진 것이 없지만 인생의 주체가 바뀌었다. 따라서 더 이상 율법에 매일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분의 희생을 무효화 시키는 것이 된다(21절). 

 

묵상:

절대 거룩의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는다면 우리 중에 무죄 선고를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믿음에 따라 전력투구를 했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십자가에서 흘린 그분의 보혈로 자신의 죄값이 치뤄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행위로써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줄 알았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존재 상태를 변화시켜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합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 다른 무엇을 더하려 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넘치도록 충분합니다. 그분이 행하신 일에 우리가 더할 것은 없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이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를 요구할 때 바울이 그토록 강하게 반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할례를 행하는 것은 민족의 전통으로서 무해합니다. 하지만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에게서 무엇인가를 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신실하셨기에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마음의 조화에 따라 휘둘립니다. 마음의 조화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의 확신”이란 “내 믿음이 약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확신입니다. 그렇기에 그분 안에 머물러 사는 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신분은 취소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은 탈취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