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게바와 바울의 충돌(갈 2:11-14)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7. 12. 06:46

해설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에 이어 사도는 얼마 후에 안디옥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 전한다. 베드로의 원래 히브리 이름은 ‘시몬’(혹은 시므온)이었는데, 예수께서 그에게 ‘게바’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 아람어 ‘게바’는 헬라어로 ‘페트로스’ 즉 바위를 의미했다.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그 신앙 고백의 기초(바위)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겠다면서 새 이름을 지어 주셨다(마 16:18). 바울은 이 편지에서 ‘게바’라는 이름을 ‘베드로’라는 이름 보다 더 자주 사용한다(1:18; 2:9, 11, 12, 14). 베드로라는 이름에 덧씌워진 사도적 아우라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언제, 무슨 일로 게바가 안디옥을 방문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다. 그 때 바울은 게바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격하게 충돌했다(11절). “그를 나무랐습니다”로 번역된 ‘안티스테미’는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을 맞서 싸우는 행동을 의미한다. 바울이 게바와 충돌한 이유는 그의 위선 때문이었다. 그는 안디옥에서 지낼 때 비유대인 신도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곤 했다. 게바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의식을 버릴 수 있었고(행 10장) 그로 인해 이방인들과 합석하여 음식 먹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이 왔다”(12절)는 말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대표들이 안디옥을 방문했다는 뜻이다.게바는 비유대인 신도들과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그들이 도착하자 게바는 얼른 몸을 피했다. 그러자 다른 유대인 신도들도 그를 따라갔고 바나바까지도 그렇게 했다(13절). 바울은 이 행위를 “위선”이라고 정의한다. 그 모습을 보고 바울은 격분하여 게바를 따라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따져 묻는다(14절). 게바의 행동은 예루살렘에서의 합의를 무효화 하는 것이며, 이방인 신도들에게도, 유대인 신도들에게도 혼란을 주었기 때문이다. 

 

묵상: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마음으로 믿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머리에서 손과 발까지의 거리는 어쩌면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보다 더 멀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의 환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행 10:36)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넬료의 집을 방문했고, 그 집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설교하는 중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세례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는 이 일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소환되어 변호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근거하여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예루살렘 신도들에게 설득시킵니다(행 11:1-18). 

 

하지만 전통은 그리 쉽게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종교적인 전통은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신도들은 그리스도가 만민의 주님이며 복음은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머리로 받아 들였지만, 그 지식과 믿음대로 행동하기에 내적 저항이 너무도 강했습니다. 유대인 신도들 중에는 첫째,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원을 받으려면 유대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유대주의자들)도 있었고, 둘째, 이방인이 찾아와 복음을 믿겠다면 받아 주겠지만 굳이 찾아가 전도할 것 까지는 없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셋째,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었습니다.

 

게바는 세번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방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역시 강경한 유대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안디옥에서 게바가 취한 행동은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엉겁결에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고,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을 참을 수 없는 위선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정을 따라 게바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었습니다. 게바는 바울의 태도로 인해 심히 당황했겠지만, 뭐라 답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비겁함에서 나왔고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이라고 해서 인격적으로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습니다. 게바의 행동은 책망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격분하여 공개적으로 게바를 몰아 세운 바울의 행동도 잘 했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두 사도는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위선과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며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