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인문학을 하나님께

강용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자족하는 마음이 행복입니다.’ / 한재욱목사

새벽지기1 2024. 7. 13. 06:41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강용수 교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중 ‘시계추 이야기’를 하나님께 드리며

‘자족하는 마음이 행복입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경구입니다.

여기서 ‘고통’이란 단어는 ‘괴로움’ 혹은 ‘욕망’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인간은 브레이크가 없이 무한질주하는 욕망 때문에 괴롭습니다.

이 세상은 나의 욕망을 호락호락 쉽게 이루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차여차하여 그 욕망을 이룬다 해도 행복이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곧 ‘권태’가 오기에 그러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그토록 욕망해서 얻었다가

곧 싫증을 느끼고 또 다른 장난감을 욕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마를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면 행복했는데,

열 잔을 주면 권태를 넘어 고통에 이르는 이치와 같습니다.

즉 가난한 자는 가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고통스럽고,

많이 가진 자는 권태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마치 시계추처럼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간다.”고 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반찬 항아리가 열둘이라도 서방님 비위는 못 맞추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욕망 가득한 인간은 마치 오비디우스의 신화 시집 『변신』에 나오는

에리직톤(Erisichton)처럼 먹고 또 먹어도 허기를 채울 수 없어,

마침내 자기 몸을 뜯어먹는 비극 속에 삽니다.  

우리 인간이 욕망 덩어리가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탐욕 때문에 멸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모든 것이 풍족했던 에덴동산에 살면서도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탐내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 옷 한 벌, 금은덩이를 탐하여

이스라엘을 패배하게 만들고 돌에 맞아 죽은 아간,

은 한덩이와 옷 두벌 때문에 선지자 엘리사를 속이고

문둥병을 얻은 선지자 후보생 게하시...

탐욕은 교만과 더불어 패망의 선봉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감사하고 자족하는 사람입니다.  

김용삼 시인의 시 「호박꽃 감사」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장미처럼 예쁘지 않아도 /

노란 별 모양의 꽃이 된 것 감사 /

종종 내게 날아와 /

귓가에 윙윙 노래를 불러주는 /

꿀벌 친구가 있어 감사밤이면 둥근 달을 쳐다보며 /

둥근 열매의 꿈을 꾸게 한 것 감사 /

그리하여 가을 농부의 얼굴에 /

 

웃음꽃 피우게 하는 것 감사자족(自足)하는 삶이란,

남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하며 누리는 삶입니다. 

달팽이는 빨리 달리는 노루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바다를 느긋하게 유영하는 해파리는

빠르게 날아오르는 종달새를 신경 쓰지 않고,

주님이 주신 느린 몸을 천천히 움직여 풍경을 보며 삽니다.

자족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세상 정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항의 몸짓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행복입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