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인문학을 하나님께

막스 프리쉬 「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 ' 내 모습대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

새벽지기1 2024. 6. 24. 06:16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막스 프리쉬의 소설 《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를 하나님께 드리며

‘내 모습대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또 다른 인생? 나는 생각한다(중략)

장님 역할을 하는 그의 인생(중략)

그의 이름을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나는 옷을 입어보듯이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 보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합니다. 
 인간의 존재적 불안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막스 프리쉬는

《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에서 하나의 인물을 다른 상황에 비치하고

다른 이름과 속성을 지닌 인물로 변형시키는 역할 놀이를 수행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게 한 것입니다.

간텐바인은 사고로 눈을 살짝 다쳤을 뿐인데,

맹인인체 하기로 하고 맹인 행세를 하면서 결혼까지 하고 생활합니다.

예술사학자 엔데를린, 건축가 스보보다 그리고 이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는 릴라라는 이름의 주인공들이

마치 ‘옷을 입어보듯’ 허구적 상황에 맞는 놀이를 끊임없이 수행합니다.

특히 릴라는 배우로, 백작부인으로, 가정주부로, 아이가 없거나 있는 여성 등으로 변형됩니다. 
 

이를 통해서 막스 프리쉬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도록 만들면서,

동시에 현대인의 정체성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인물의 정체성 역시 분열적입니다.

또 줄거리가 일목요연하게 전개되지 않으며 결말은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납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애처롭게 찾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찾는 방황입니다. 
남이 아닌 나로 살아갈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남의 욕망에 대한 모방 욕망이 아닌 나의 비전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하늘의 별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발 아래의 아름다운 꽃을 느끼지 못합니다.

남의 네잎 클로버만 부러워하는 사람은

그보다 더 소중한 나의 세잎 클로버를 밟아 버립니다.

나의 우물을 가만히 두면 오물이 됩니다.

나의 우물을 소중히 여겨 퍼 올리면 샘물이 됩니다.  
“멋이 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멋은 남이 아니라 나라는 뜻입니다. 
가장 나다운 게 가장 멋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미물들에게 자신의 길을 주었습니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습니다.

달팽이는 빨리 달리는 노루를 부러워하지 않고,

행복한 컵라면은 짬뽕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미물들도 이러할진대 사람은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주신 분량만큼 삶을 결산하십니다.

거북이에게 토끼같은 능력이 왜 없냐고 질책하시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신 것, 나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요, 
그 일을 이룰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