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4)-
다음 질문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한다고 할 때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하는 거요. 기도를 방법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오. 물론 방법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오. 한국교회는 지금 기도 인플레이션에 떨어져 있소. 그것이 모두 방법론의 차원에서 머물러 있다는 증거요.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느냐에 목숨을 거오. 기도가 습관이 되었소. 커피 한 잔을 놓고도 기도하오. 목회 중에 심방이라는 게 있소. 일단 어느 신자의 집에 가면 예배를 드리오. 원칙적으로 말하면 이건 예배라기보다는 기도회라고 하는 게 옳소. 편의상 가정예배라고 합시다. 대표기도, 설교 후 기도, 주기도나 축복기도를 하오. 다과를 먹기 전에 또 기도하오. 좋은 기도습관은 필요하지만 기도의 상투성에 떨어지지는 말아야 하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원칙적으로 무의미하오. 이건 마치 숨을 어떻게 쉬는가 하는 질문과 같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기를 내놓는 사람은 당연히 기도하게 마련이오. 우리가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숨을 쉬는 것처럼 말이오. 다만 숨을 더 잘 쉬는 방법이 있긴 하오. 마치 단전호흡이 숨쉬기 연습이듯이 좋은 기도 연습도 있긴 하오. 두 가지 길이 있소. 하나는 좋은 기도문을 읽고 외우는 것이오. 좋은 시를 읽고 외우는 게 시인이 되는 바른 훈련과정인 것과 비슷하오. 그대는 일단 좋은 기도문을 읽고 외우도록 해보시오. 다른 하나는 직접 기도 경험을 하는 거요. 기도 경험을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오. 그런 경험이 나에게 많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소. 시 쓰기와 비교해서 간단히 설명하겠소. 아무리 좋은 시를 읽고 외워도 자기가 직접 시를 쓰지 않으면 시인이 될 수 없소. 시인을 가리켜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한다오. 삶을 언어로 형상화하는 일이오. 이를 위해서는 삶을 이해하고, 언어의 세계를 이해해야 하오. 기도하기도 비슷하오. 삶을 이해하고, 그것을 언어로 형상화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오. 시와 다른 점은 삶을 단순히 현상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한다는 점이오.
위의 설명을 듣고 그대는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구려. 기도가 너무 어렵다거나, 기도가 너무 작위적으로 나갈 염려가 있다고 말이오. 기도가 자칫 자기의 신학적이고 현학적인 지식을 자랑하는 기회로, 그래서 교언영색에 떨어질 수 있다고 말이오. 그것보다는 성령의 감동이 더 중요한 게 아니냐고 말이오. 그대의 말이 옳소. 기도는 어린아이의 옹알이와도 같소.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호소요, 탄원이요, 간구요. 지금 나는 그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오. 그런 기도의 영성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오. 아무런 마음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말장난으로 나타나는 기도를 그대도 많이 경험했을 거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말이오. 주일공동예배에서 드려지는 대표기도의 내용을 돌아보시오. 담임 목사를 위한 기도, 각 교회 기관을 위한 기도, 빈자리를 채워달라는 기도, 교회의 한 해 목표를 위한 기도가 드려지오. 이런 식의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 나라, 뜻을 위한 것이 맞소? 그런 기도에 우리의 영혼이 움직일 수 있겠소? 거꾸로 우리 영혼이 잠들기 맞춤하오.
아무리 노력해도 상투적인 기도 그 이상의 기도를 드릴 수 없는 사람은 어찌하란 말이냐, 하고 묻고 싶소? 억지로 기도하려고 하지 마시오. 억지로 기도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요. 기도의 부담감에 허우적거리든지 아니면 전문적인 기도꾼으로 자리를 잡을 거요. 기도의 요령만 피울 거요. 일단 기도의 영성으로 들어가는 게 필요하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상태요. 이를 위해서 앞서 말한 대로 좋은 기도문을 읽으시오. 특히 시편을 읽으시오. 시편의 영성에 공감이 갈 때까지 읽고 배우시오. 충분히 준비가 되면 누가 옆에서 말려도 기도하고 싶어질 거요. 기도의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말씀에 위배되는 게 아니냐, 하고 생각이 들지 모르겠소. 아니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기도를 말하는 게 아니오. 늘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영혼이 깨어 있으라는 뜻이오. 그럴 때만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이 가능하오. 이런 점에서 그대와 나는 이미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오. (2010년 8월29일, 주일, 불규칙한 날씨, 수련회에서 돌아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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