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주기도(27)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6. 29. 07:16

-당신의 나라(7)-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배타적인 구원 통치라고 한다면 사람이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냐, 하고 궁금하게 생각할 수도 있소. 일리가 있는 질문이오.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소. 우리의 삶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들 중에서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소. 태양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항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오. 인류가 지구에게 상당한 기간 존속하려면 태양이 계속해서 빛을 발해줘야 하오. 우리가 또 하나의 태양을 만들 수는 없다오. 촛불 한 자루로 태양 빛을 대신할 수도 없소. 지구에는 적당한 중력이 작용하고 있소. 만약 중력이 반으로 줄어든다면 사람은 물론이고 지금과 같은 중력 상태에 적응해서 진화해온 거의 모든 생명체들이 죽게 될 거요. 중력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오.

 

     그대는 내가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든다고 생각하는 거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많다고 말이오. 어려운 이웃을 돌보거나 생태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 투쟁하는 일도 그 중의 하나요. 교회를 돌보고 선교사들을 돕는 일들도 거기에 포함되오. 옳소. 교회와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소. 구약의 예언자들이 강조한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매진해야 하오. 이런 부분에서는 한국교회가 반성할 일이 많소. 교회 구조가 교회 자체를 위한 방식으로 짜여 있소. 인적 에너지나 물적 토대가 거의 이런 방식으로 나가고 있소. 교회를 마치 방주처럼 생각하고 악한 세상은 어찌 되었든지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오. 더 나아가서 교회이기주의가 득세하고 있소. 이런 한국교회 상황에서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세우는 일을 강조한다는 것은 시급한 일이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일치하는 건 아니라오. 주기도를 다시 정확하게 읽어보시오. “우리가 당신의 나라를 일구어가게 하시오며...”라고 하지 않고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했소. 하나님이 임하기를 바란다는 기도요. 이것은 마치 악한 군수 때문에 고통당하는 군민들이 암행어사가 출도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소. 군민들은 악한 군수를 제거할 능력이 없소. 최고 권력자인 임금의 특사인 암행어사만 그걸 해결할 수 있소. 군민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암행어사가 나타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소. 옥에 갇힌 춘향이의 심정과 같소. 이것으로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오? 이제 우리는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는 거요?

 

     아니오. 기도는 기도의 내용대로 살겠다는 결단을 포함하는 것이오. 빈말이 아니라 삶의 내용이 따라오는 말이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기 마련이오. 이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삶의 태도요. <서편제>에서 아버지는 소리를 배우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소. 소리는 밥보다 좋은 거라고 말이오. 득음을 원하는 사람은 소리를 배우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오. 나중에 소리가 자기 실존 전체를 지배하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고 싶어도 하나님 나라가, 즉 그의 통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데에 문제가 있을 거요. 득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소리 내는 훈련을 하듯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인식하는 훈련이 필요하오. 소리 훈련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 훈련도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소. 여기서 오해하지 마시오. 우리가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간다는 게 아니오. 하나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소관이오. 우리는 그 나라를 인식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이오. 이를 위해서 성경도 배우고, 신학도 공부하고, 삶을 성찰하기도 하는 거요. 그 배움이라는 것도 일단 기초가 중요하오. 잘못된 배움은 배우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오. 바른 배움과 훈련의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 통치에 참여하게 되는 거요. 우리가 주도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구경꾼도 아닌, 말하자면 그분의 일꾼으로 참여하게 되는 거요. 이런 일꾼의 입에서는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며...”라는 기도가 나올 것이오.(2010년 8월15일, 주일, 구름,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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