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370

주기도(37) / 정용섭목사

-시험(1)-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시험에 든다는 게 무슨 뜻이오? 악의 유혹에 빠진다는 말이 아니겠소. 우선 시험에 들게 하는, 또는 유혹하는 자가 누군지 생각해보시오. 성서에는 이런 유혹에 대한 일화가 많소.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하고 있었을 때요. 마귀가 나타나서 세 가지 시험을 하셨소. 돌로 떡을 만들라. 하나님의 아들라면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마귀에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주리라. 각각의 시험이 특색이 있소. 특히 세 번째 것을 보시오. 부귀와 영화는 결국 마귀의 선물이라는 뜻이 아니겠소? 이 내용에 대한 설명은 더 이상 하지 않겠소. 지금은 시험의 주체가 누군지를 말하고 있는 중이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

주기도(36) / 정용섭목사

-사죄기도(3)-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했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것은 아니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런 ‘기브앤드테이크’ 방식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그렇다면 주기도가 우리를 용서해달라고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했다는 단서를 단 이유는 무엇이오? 그 대답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소. 하나는 이 단서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오. 이런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용서’라는 사태 안으로 빠져드는 것이오. 용서의 현실로 말이오. 용서하고 용서받는 현실에서 우리는 구원을 경험하는 거요. 사죄 기도는 생명의 중심과 연관된 경건한 행위요. 여기서 조심해야 할 ..

주기도(35) / 정용섭목사

-사죄기도(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는 문장은 앞에서 말한 성서의 죄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오. 성서의 죄 개념은 생명 창조주인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인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소.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말이오. 그런데 ‘우리에게 죄지은 자’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잘못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오. 남에게 피해를 입힌 행위 말이오. 우리가 일반적으로 죄라고 생각하는 것들이오. 남의 집의 물건을 훔쳤다거나 중상모략 같은 것들이오. 파렴치한 행위들이오. 이런 것들은 사실 종교적인 차원보다 먼저 이 세상의 도덕률이나 실정법의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안들이오. 성서가 이런 정도의 차원에서 인간의 죄 문제를 접근하는 것..

하나님의 큰 그림(창세기 48장) / 김영봉목사

해설:야곱은 이집트로 이주한 후 17년을 더 살았습니다. 흉년이 지난 후에도 가나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곱의 병환이 깊어져서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습니다(1절). 당시에는 가장이 제사장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축복 기도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요셉과 두 손자를 보고 야곱은 기력을 다해 일어나(2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언약을 상기시키며 두 손자를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고 말합니다(3-5절). 아들로 삼겠다는 말은 유산 상속권을 준다는 뜻입니다(6절). 야곱이 그렇게 한 것은 일찍 세상을 떠난 라헬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7절). 야곱은 두 아이를 끌어 안고 입을 맞추고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세상을 주목하는 우리를 보라!(사도행전 3:4-6)

세상을 주목하는 우리를 보라!(사도행전 3:4-6)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한 지체장애인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고 담대하게 선언했습니다. 왜 자기들을 주목하라고 했을까요? 돈 한 푼 없으면서도 자기들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뒷날 베드로는 사람들이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자투리 시간에도 지붕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행 10:9-10). 그렇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기도하는 사..

세계 모든 민족의 저주거리가 되게 하리라.(렘 26:1-25) / 신동식목사

선민이라 자부하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강력합니다. 예루살렘 성이 세계 모든 민족의 저주 거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예레미야는 유다왕 여호야김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도 가감하지 말고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메시지입니다.백성들이 듣고 회개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끔찍한 심판에 이를 것이라 말씀합니다.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는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예루살렘이 실로와 같이 된다는 심판입니다. 실로는 하나님의 성소가 처음 있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부패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렘 7:12). 엘리의 죽음으로 실로의 시대가 끝납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이 세계의 저주 거리가 됩니다.그것은 예루살렘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글쓴이/봉민근달리는 자동차는 멈추게 할 수 있어도 지구는 멈추게 할 수 없다.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하나님이 정하여 놓은 것은 인간이 절대로 바꿀 수가 없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나를 바꿔야 한다.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해야 한다.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재앙으로 다가온다.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살라고 주신 것이다.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모든 것을 소중히 대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남을 경시하고 미워하며 다투는 것 또한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멸시하는 태도다.이는 그것을..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봉천동 슈바이처로 불리며평생 가난한 사람들의 주치의로 살아온 공로로국민훈장인 동백장을 수훈한의사 윤주홍 님.윤주홍 님의 헌신적인 삶은1973년, 판자촌이 늘어섰던 서울의 한 마을에'윤주홍 의원'을 열면서 시작합니다.윤주홍 님은 평생 진료비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가난한 주민들을 생각해 진료비는 절반 수준만 받았고,부모가 없는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서무료로 치료와 수술을 해주었고,매년 의사가 없는 섬마을에도 찾아가서도의료 봉사를 했습니다.작은 질병부터 골절이나 화상,맹장 수술에서 분만까지 전반적인 치료와 수술로아픈 주민들을 돌보았습니다.놀랍게도 이러한 삶은 무려 46년 동안이어졌습니다.또한, 생계가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관악장학회'를 설립한 후, 지금까지 장학금을지원받..

끝까지 소명의 자리를 지키는 예레미야(렘 26:16-24)

렘 26:16-24 묵상입니다. 예레미야를 변호하는 관료들과 모든 백성들.‘이 사람이 죽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그는우리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다’ 심판을 예언했던 선지자의 예를 드는 장로들.히스기야는 회개하고 미가 선지자를 살려주었고여호야김은 우리야 선지자를 죽였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에 참여했던 사반의 아들 아히감.하나님께서 아히감을 통해 예레미야를 구하십니다.예레미야는 환란 중에 선지자의 길을 계속합니다. 성령님께서 부르신 이들과 함께하십니다.소명의 길을 갈 수 있음이 은혜요 복입니다.지금 여기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자리가 삶을 보장하지 않습니다.(렘 26:16-24) / 방광덕목사

렘 26:16-24 묵상입니다.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결정을 고관들과 백성들이 반대합니다. 살 길을 가르치는 선지자를 죽이려는 세력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은 죽음의 세력이 될 위험이 많습니다. 자리가 삶을 보장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