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 422

교만

교만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자아를 경외하는 마음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우리 모두를 영광을 도둑질한 범죄자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상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영광을 도둑질하고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열심히 개인적인 영광을 추구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우리의 공로로 돌릴 때가 생각보다 많다. 우리는 교묘한 우상 숭배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 것을 다른 것이나 특정한 장소에 속한 것으로 간주한다. -폴 트립의 [경외]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교만입니다. 사단은 교만을 사용하고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경외의 문제는 교만과 겸손의 싸움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관계에 있어서 대립하게 된다면 사실은..

인생에 두려움이 몰려올 때

인생에 두려움이 몰려올 때 글쓴이/ 봉민근 사람은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뒤가 급하면 화장실에 가야 한다. 몸속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혈관 중에 한 곳만 막혀도 몸에 이상이 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 밖에 일이 몰려오면 두려움을 느끼며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슬픔과 아픔과 고통속에서도 스스로 벗어나 제어하기 힘든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나약하기 짝이 없고 근심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두려움은 사탄이 주는 것! 두려움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문제다. 두려움과 근심 걱정을 할수는 있으나 굴복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말씀하시는 ..

과오를 대하는 자세

과오를 대하는 자세 두 고등학교의 농구팀이 서로 열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방어를 하고 있던 팀의 한 선수가 공을 빼앗고는 상대방 골대를 향해 공을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슛하기 위해 뛰어오르는 순간 상대 팀 선수가 그 선수를 잡아당겨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런데 심판은 이 반칙 행위를 못 보았는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경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반칙한 선수의 감독이 '타임'을 외치며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반칙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리곤 반칙한 선수를 다른 선수와 교체했습니다. 이러한 감독의 행동에 관중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고 이후 선수들은 페어플레이 정신을 바탕으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페어플레이는 스포츠의 의무는 아니지만 매너와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5,6) 하나님은 욥을 ‘순전하고 정직하여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을 떠난 자’(욥1:1) 때로는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욥38;2)라 평하십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대면한 욥,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자신의 피조물 됨을 깨닫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비천한 자(욥4:4)로 고백합니다. 분명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바로 아는 자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삶으로 예배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시편90: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시편90:8)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지은 대로 은밀한 죄까지 조목조목, 하나하나 들추어서 하나님 앞에 펼쳐 놓으신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노하시고, 분을 내실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부끄럽고, 더러운 죄를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죄를 지었고, 또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 죄를 다 씻지 않고, 다 용서받지 않고는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기까지는 우리는 추악한 죄악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들을 씻겨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려 주셨습니다. 그 보혈을 믿는 자는 ..

신실한 믿음과 부활의 소망이 답입니다.(단 12:5-13)

단 12:5-13 묵상입니다. 마지막 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마24:36). 지혜 있는 자는 비록 환난 중에 있다 해도 신실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인내합니다. 다니엘은 모든 일의 결국을 거듭 묻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간직하고 때를 기다리라 하십니다. 언약 백성이 연단 받고 정결케 되는 날까지. 하나님만이 절대주권자시요 심판주 되심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인내함이 복입니다. 신실한 믿음과 부활의 소망이 답입니다.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 소망의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게 하소서!

'환난을 두려워 말고 끝까지 가라'(단 12:5-13)

단 12:5-13 묵상입니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일정한 시간을 지나며 깨지는 성도의 권세는 성도의 끝이 아니라 악의 끝임을 알림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겪는 환난과 박해는 패배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승리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천사는 다니엘에게 앞날에 대한 말씀을 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환난을 두려워 말고 끝까지 가라 합니다. 그 끝은 승리와 영원한 안식입니다.

불륜까지도 구속사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창38:27-30)

불륜까지도 구속사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창38:27-30) 본문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낮 뜨거운 불륜의 결과 다말이 쌍둥이 형제 베레스와 세라를 출산하는 내용이다. 놀라운 것은 당대 최대의 수치스런 이 불륜사건 결과 죄악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베레스가 장차 가장 거룩하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됨은 물론, 구속사의 주역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의 부패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당신의 구속사를 계속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적 은혜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다말은 훗날 기생 라합, 이방 여인 롯과 함께 예수의 족보에 오르게 되는데, 이 또한 장차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선지자의 고향 (막 6: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막 6:4) 선지자와 고향 운운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아마 유대인들의 속담인 것 같습니다. 그런 속담을 빗대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신 거겠지요. 복음서가 보도하는 예수님의 진술 중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도 있고, 사도들에 의해서 추가된 것도 있고, 혹은 성서기자의 가필도 있으며,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구약이나 속담에서 인용한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구분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복음서의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복음서는 아주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바로 성령의 활동입니다. 그 ..

배척당한 예수 (막 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 본문은 고향 사람들이 예수의 형제들을 열거한 다음에 예수님을 “배척했다.”고 표현합니다. 성서기자는 이미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암시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했듯이, 예수님과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이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입니다. 저는 유대교 신학을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복음서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이 그 이유지만, 이것은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