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국교회 회복 프로젝트

교회가 살아나는 길(2) - 빠름에서 바름으로

새벽지기1 2020. 1. 17. 07:15


교회가 살아나는 길(2) - 빠름에서 바름으로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신 분들이 있다면 동일한 경험을 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말을 잘 모르는 분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빨리 빨리”입니다. 이 말이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디는 한국 사람을 보면 “빨리 빨리”를 외칩니다.

 

실제로 “빨리 빨리”는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빨리 밥 먹어라, 빨리 공부해라. 빨리 자라, 빨리 좀 합시다. 이렇듯 “빨리 빨리”는 우리의 언어생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의식 한가운데에 “빨리 빨리”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빨리 빨리 되지 않으면 마치 세상에서 뒤 떨어진 인간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짧고 굵게 살자는 말을 좋아합니다. 빨리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의미 없이 사는 인생보다는 나을 수 있을 것 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이 부끄러운 인생이 되는 길이 더 많음을 봅니다. 화려하게 시작하였다가 쓰레기처럼 끝나는 것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빨리 빨리”의 세계관에는 이러한 모습이 투영되어있습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쓰는 언어만큼 그렇게 살게 됩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잘 알려면 그가 쓰는 언어들을 잘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빨리 빨리”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빨리 끝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해결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정치의 영역입니다. 임기가 몇 년 안 되는 데 마치 50년에 이룰 것을 자신의 임기 내에 다 하려고 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러다보니 여기 저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빨리 하는 것이 결코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교회의 영역에서도 실력을 발휘합니다. 성경은 성도의 신앙이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자라남은 결코 빨리 되지 않습니다. 잠자고 일어났다고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빨리 빨리 해치우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세례를 주는 것에서 잘 나타납니다. 교회 생활이 어느 정도 되면 세례를 줍니다. 그 사람의 신앙고백과 관계없습니다. 아마도 군대에서 받는 진종세례가 그 대표적입니다. 그러다보니 직분을 주는 것도 번갯불에 콩 볶듯이 주어집니다. 빨리 빨리가 가져다 준 선물입니다.

 

얼마 전에 아주 재미있는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장로 임직에 대한 대화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현행 장로교 헌법에 의하면 장로가 없으면 시무 목사로 칭합니다. 시무 목사는 해마다 임시 당회장의 청원을 통하여 교회를 담임하게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찮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누군가 불만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분이 말하기를 장로 세우면 되지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장로 세우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답을 하자 아주 괴이한 답을 돌아왔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 아무나 세우면 되지, 뭘 그렇게 고민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장로가 가지고 있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 분인지 모르겠지만 듣고 있는데 속이 많이 아팠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교회의 직분도 빨리 빨리 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외적인 편함 혹은 체면분입니다. 그러니 신앙의 모습이 어떠하겠습니까? 모든 교회와 직분자들이 다 이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빨리 빨리의 신앙은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단지 외적인 성장에만 관심을 갖는 것을 봅니다. 교회를 개척하거나 혹은 청빙을 받은 모든 분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수년 내에 성장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수를 다 사용합니다. 세상이 사용하는 마케팅 기법을 총 동원하여 각종 집회를 엽니다. 그리고 목사는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교회 성장 세미나에 돌아다닙니다. 그 목적은 오직 교회의 성장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장 세미나의 주 강사들은 수년에 빠른 성장을 일군 발군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더욱 호가가 넘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빠른 성장은 반드시 문제를 야기합니다. 목사의 독재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교주화의 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성장한 교회의 가르침은 곧 성경의 권위와 방불한 것을 봅니다. 그래서 한심한 목사들이 성장한 교회에서 종종 나옵니다. 이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현장에서 쓸모없다고 말하는 용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신학교 채플시에 강단에서 이러한 설교를 한 성장한 교회의 목사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꼴불견이지만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생각들이 호응을 얻고 있다는 비참한 현실입니다.

 

물론 빠른 성장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일이 아닙니다. 교회는 빨리빨리 소망한다고 성장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철저하게 성령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순종할 뿐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사람의 원함대로 되어 지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잊기에 빨리 빨리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는 길은 빠름의 목회에서 바름의 목회로 전환하는 것에 있습니다. 빨리 성장하려고 용쓰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성장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진진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성경과 신앙고백 그리고 교회사의 가르침에 깊이 고민하고 세워질 때 바른 성장이 가능합니다. 더구나 바른 목회는 숫자의 울무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숫자적 성장에 몰두하면 반드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바른 목회를 위해서는 인내함이 필수입니다. 성장이 더디기에 다가오는 온갖 유혹과 우울함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바른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분투하였던 성약 교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가 기도회를 시작한 때가 1962년 11월 이시 며칠입니다. 그 이듬해 1963년 정월부터는 기도회에 다 같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일년을 지내고 1964년부터는 교회라는 이름을 딱 내고서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시작한때로부터 보더라도 지금 8년이 되었습니다. 그런 긴 세월동안에도 수가 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잘 한 것이냐 하면’ 아 잘하는 것이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누가 저에게 8년이나 된 교회가 항상 처음에 시작할 때의 수만큼 딱 유지하고 있는 것이 뭐 그렇게 잘하는 교회인가? 그거 잘하는 교회 아니다고 했습니다. 물론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러고 있습니까? 재주가 없어서 그렇습니까? 물론 재주도 없지만 재주나 인기를 가지고 사람을 모아서는 결국 교회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러고 있습니까? 그런 것을 참아 가면서 값을 지불하는 것은 그 대신에 얻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모델 처치 즉 원형적인 교회라는 것을 지향해서 지금까지 걸어온 것입니다. 모델 처치를 지향하기 위해서 특수한 인물들만 모인 것이 아닙니다. 각각 어려운 사정이 있는 교우들이 모여서 한 신성한 가족을 이뤄 나갔는데 모두 다 문제를 가지고 있고 어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든지 있을 수 있는 이러한 환경에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전형적인 교회가 되는가를 중시하겠다는 것입니다.”

 

60-70년에는 한국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이 있었습니다. 교회 문만 열면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약교회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바른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결정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전무한 강해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강해하고 신앙고백서를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50년을 이어왔습니다. 놀랍게도 지금은 사람들이 바른 교회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느냐고 할 때 살펴볼 수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살아갈 길은 빨리 성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바르게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빨리빨리가 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교회 문만 열면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를 향하여 비난하고 돌 던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20%로도 안 되는데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빨리빨리의 신앙과 교회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교회는 대박이 없습니다. 빨리빨리의 빠름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원형의 교회를 찾아가는 바른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이 일은 매우 지리 합니다. 그러나 50년 교회를 생각하면서 다시 시작한다면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