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국교회 회복 프로젝트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길(3) - 현세적 신앙에서 내세적 신앙으로

새벽지기1 2020. 1. 17. 07:16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길(3) - 현세적 신앙에서 내세적 신앙으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토정비결”입니다. 일년의 운수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점집이 참 많이 있습니다. 결혼할 때는 궁합을 봅니다. 연예할 때는 연예점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타로 점”집이 많이 있습니다. 점에 관한 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심은 특심합니다. 매우 이성적일 것 같은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점집을 기웃 거린다는 이야기는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한 보도에 의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점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직 거듭나지 않은 이들의 어리석은 행동이라 생각할 수 있을 수 모르지만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 한국 교회를 비추어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곪을 대로 곪아 있는 한국 교회의 얼굴입니다.

 

사람들이 점을 왜 보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현세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는 모습이 점을 보게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길 가고자 하는 이기적 욕심이 점집을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내세에 대한 관심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현세에 대한 탐욕으로 물들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성경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탐욕에 허덕이는 자이며, 마침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가 될 것이라 말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현세적 삶에 대한 부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2천억, 3천억 하는 교회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대형교회를 향한 앙망함이 식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각종 교회 성장 세미나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형교회 목사는 앞뒤 따지지 않고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목사로 여겨줍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교회들이 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도 나도 교회를 크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재정적 욕심으로 인하여 야기된 부끄러운 모습들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그만 청빈해도 엄청난 칭찬을 받는 형국입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당연한 것이 놀라운 것으로 여김을 받는 세상입니다. 이 모든 것에는 온갖 종류의 정욕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목사들이 이렇게 살아가니 성도들은 어떠하겠습니까? 본을 받아 사는 이들의 모습에서 내세 중심적 신앙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교인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자발적 헌신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점점 쉽게 신앙하기를 원합니다. 자신은 희생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종교인으로서 남아 있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찾는 이유가 구원의 기쁨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귀를 간지럽게 해주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여기에 교회의 무너짐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는 길은 현세적 신앙에서 내세적 신앙으로의 돌아감이 있어야 합니다. 천로역정에 이러한 교훈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주인공 크리스챤이 좁은 길을 통과 한 후에 해석자의 집에 들어갑니다. 해석자는 크리스챤에게 정욕과 인내라는 두 아이를 보여줍니다. 해석자는 정욕과 인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합니다.

 

“정욕은 현세의 사람들이며, 인내는 내세의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당신이 본 것과 같이 정욕은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이 세상에서 다 가지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그렇게 지금 당장 좋은 것들을 반드시 가지려고 합니다. 그들은 내년가지 즉, 다음 세상이 올 때까지 그들의 몫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손에 잡은 한 마리의 새가 숲에 있는 두 마리의 새보다 가치있다’ 라는 속담이 그들에게는 다음 세상의 복락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보다 더욱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보는 대로 정욕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낭비해 버리고 그 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누더기 옷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에만 어두운 사람은 이 세상의 마지막에 모두 정욕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로 대변되는 내세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내가 누리는 것은 다음의 세상의 영광은 결코 닮아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을 탐내기보다는 장차 올 것들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고후4:18]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살길은 현세적 정욕의 삶에서 내세적 인내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길은 바로 현세적 신앙에서 벗어나서 내세적 신앙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현세적 신앙은 교회의 외향은 거대하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처절한 세속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다양한 차별이 있음을 봅니다. 이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 거대한 부동산 투기 광풍의 중심에 성도들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부동산 광풍은 현세적 신앙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성도들이 영적인 자부심은 다 버리고 철저하게 정욕에 붙들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부동산으로 돈 번 것을 자랑하고 정보를 나누는 한심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헌금 많이 내니까 교회도 희희낙락합니다. 세속화의 전형을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끄러운 현실 가운데 한국 교회가 돌아 갈 길은 다시금 내세적 신앙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본향을 향하는 나그네로 살아가게 합니다. 현세적 정욕을 이기는 길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우리 교회가 살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