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국교회 회복 프로젝트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길 (7) - 성장 기술자에서 설교자로

새벽지기1 2020. 1. 24. 03:21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길( 7) - 성장 기술자에서 설교자로

 

“목회와 교회 성장에 관한 중요한 서신입니다”

 

교회로 배달되어온 한 단체의 편지봉투에 있는 문구입니다. 처음 보아도 혹하게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여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이 전도가 힘들고 교회가 자립하기가 어려워진 시대에는 더욱더 마음이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목회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한국 교회의 질병을 진단 할 때 반드시 대형교회의 우상화와 성장 중심의 목회를 지적합니다. 이것은 보기에는 좋은 떡이지만 반드시 탈나게 하는 상한 음식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화려해도 우리 몸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망가지게 하는 상한 음식을 계속해서 먹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한국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이러한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반증이 수십억 혹은 수백억 되는 교회당들이 부도가 나거나. 경매에 붙여지는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에 합당하게 감당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형교회에 대한 우상과 함께 그로 말미암아 얻어질 명예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모든 주도권을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몰라도 교회만 크면 각종 매체의 주요 강사가 됩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면한 목회자들이 스스로 그 자리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교회를 키우려고 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목회자들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좁은 길을 포기한 성도들의 모습에서 잘 나타납니다. 대형 교회 다니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세상에서 성공하였다고 하는 이들이 다니는 곳은 대부분 대형교회입니다. 작은 교회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이들을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대형교회가 자신을 성공하게 하는 좋은 도구로 여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형교회 성도들은 함께하는 성도들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대형교회 다니는 것으로 만족해합니다.

 

물론 이것은 대형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형교회 성도들도 목회자를 청빙할 때 유학파를 그렇게 요구합니다. 스펙이 높은 목사를 선호합니다. 그가 가진 영적인 모습과 인격적인 자세 그리고 말씀에 대한 열심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른 말씀을 전하는 목사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귀를 시원하게 해주는 목사를 원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마도 한국 교회 목사들만큼 스펙에 대한 자괴감에 빠진 이들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경험한 목사들이 외치는 설교가 성공과 기복중심으로 가지 않는 것이 이상할 따름입니다. 또한 목사 자녀들을 교회의 힘으로 악착같이 유학 보내는 이유도 자신이 경험한 상류 사회로의 진출 때문이 아닌지 모릅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성취를 경험한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 성장을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 전도의 열심이 구원받는 한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성장을 위한 일이 됨을 봅니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모습입니다. 주님은 전도를 하는 제자들의 보고를 받고서 이적이 일어난 것을 기뻐하지 말고 하늘의 생명책에 자신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전도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도는 철저하게 교회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은 바로 수도 없이 난리하고 있는 교회성장 세미나입니다. 기독교 잡지에 실린 광고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곳에서 성장 세미나 열리는지 모릅니다. 구호도 다양합니다. “개척에서 100명 교회 만들기”, “OO 교회 이렇게 부흥하고 있다.”,“작은 교회도 성장할 수 있다.”등입니다. 더욱 기각 막힌 것은 최근에 와서 불어난 설교 세미나입니다. 이 세미나는 강의료도 고액입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설교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좋은 것 같지만 실상은 교회 성장을 위한 도구로서의 설교 세미나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교회성장이 그 목사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성장 시킨 목사와 그렇지 못한 목사의 대우는 비참합니다. 그러니 목숨 걸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을 시키려고 합니다. 또한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성장을 못 시키는 목사를 내어 쫓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피가 마르겠습니까? 교회가 식구가 아니라 사설 학원처럼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강사만 살아남는 구조가 교회입니다. 한 영혼이 소중한 사실을 놓치면 교회는 사설 학원으로 변질 됩니다. 이러한 현실과 부딪혀 싸울 때 비로소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지고, 목사가 목사다워집니다.

 

교회가 살려면 그 중심에 서 있는 목사가 분명하게 변해야 합니다. 목사는 설교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설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장로와 집사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성도가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것은 목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목사는 설교자이지 교회 성장을 위한 기술자가 아닙니다. 성장을 통하여 인센티브를 받는 그러한 학원 강사가 아닙니다. 목사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고, 성도가 그러한 목사와 함께 할 때 교회는 살아납니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전도는 말씀선포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구원받는 자를 더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일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이들이 더하여 지는 전도가 일어나려면 목사는 설교자가 되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되지 않고 성장 기술자가 되면 반드시 돈과 권력과 성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설교자가 되기 위하여 목사의 주된 일은 말씀 공부와 기도 그리고 독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한 건강함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심방과 행정은 최소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는 설교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성도는 자신의 귀를 시원케 하는 설교가 아니라 자신의 폐부를 아프게 하는 설교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굳은 죄 성이 부서지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설교자가 세워지고, 설교가 선포될 때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가 더하여 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목사가 한 주 동안 말씀을 생각하는 것과 성장을 생각하는 것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는 명확관화 합니다. 성장을 위하여 고민하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씨름하는 목사가 세워질 때 교회는 건강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위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다시금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