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국교회 회복 프로젝트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길 (6) - 소비자 중심의 설교에서 십자가 설교로

새벽지기1 2020. 1. 22. 07:27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길 (6) - 소비자 중심의 설교에서 십자가 설교로

 

교회의 역사는 설교의 역사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설교를 통하여 교회가 세워 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설교의 무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였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한 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성령이 오시고 사도를 통하여 하시는 일 역시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속 사도들과 교부들이 남긴 것은 바로 설교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교회를 회복한 것도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처절한 순교의 시간을 보냈던 스코틀랜드의 언약도들과 영국의 청교도들이 고난을 당하였던 것이 바로 설교였습니다. 설교가 교회를 세우고 넘어지기에 하는 일에 중심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대마다 설교자를 보내어 교회를 유지하였습니다.

 

반면에 역사에서 어두운 시간을 보냈던 시기는 말씀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신구약 중간기에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중세의 어두움은 다름이 아니라 말씀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설교자들이 그 직무를 감당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직분으로서는 존재하였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교회를 통하여 들려지지 않으면 성도들은 영적인 기근에 처하게 되고 마침내 세속적 가르침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러한 슬픔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말씀이 가볍게 여겨지면 성도의 삶이 천박해지고 교회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바르게 증거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소아시아에 흩어져있는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내민 서신에서 고난을 이기는 길이 말씀에 있음을 강력하게 증거 하였습니다. 이것이 정직한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강조하였던 것은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것을 먹었다가는 살 수가 없습니다. 또한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다고도 합니다. 다 같은 말입니다. 물에서 낳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을 먹어야 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말씀으로 태어 낳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상황에 관계없이 말씀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벧전 1:23-2:3]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는 일이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며 건강하게 살아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바로 설교로 부터 시작합니다. 말씀이 중요함을 설교자로부터 듣고 말씀을 읽는 자리에 나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동시에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이렇게 말씀이 살아있을 때 교회는 건강하고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두려워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사라지면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결국 천박한 존재로 떨어지게 됩니다. 말씀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것 역시 세상이 목숨 거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 말씀이 성포되지 않으면 변화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암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손봉호 장로는 한국 교회가 동네 개가 되어서 이 사람 저 사람이 툭툭치는 존재가 되었다고 한탄하였습니다. 종교개혁 이래 가장 타락한 모습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말에 대하여 반박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암흑기는 역사에 나타난 암흑기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설교의 회복입니다. 많은 이들이 설교와 설법이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목사의 말이나 승려의 말이 동일하다는 소리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것은 강단이 철저하게 소비자 중심으로 변했다는 의미입니다. 소비자의 마음에 들게 설교합니다. 소비자들이 떠나는 것이 두려워 그들의 귀를 간지럽게 해주는 설교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복설교이며, 개그 설교이고, 만담 설교이며, 간증과 예화 설교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귀를 편하게 해 줍니다. 마치 바울이 앞서 알려 주었듯이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으로 교회는 결코 세워지지 않습니다. 잠시는 히트를 치고 사람들의 마음과 귀를 시원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침내 교회를 무너지게 만듭니다.

 

회중들은 소비자들이 아닙니다. 회중들은 죄인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는 존재입니다. 또한 날마다 회개치 않으면 세상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세상에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힘들고 지칩니다. 그래서 주일만이라도 편하고 가벼운 설교를 듣고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면 마침내 어두움의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강의에서 상담으로 유명한 목사가 자신은 교회에서 결코 죄에 대하여 설교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힘든 세상에서 사는 성도들의 현실을 알고 위로의 설교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역겨운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목사들이 지금 도처에 있습니다. 삯군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스펙이 대단합니다. 박사이고 목사이고 상담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혹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모릅니다.

 

강단의 설교는 소비자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말이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설교여야 합니다. 바울은 말많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메시지에서 자신이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설교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1-2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1-2]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 박히신 것“을 전하겠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이기는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십자가의 설교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을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복음을 듣지 않고는 소생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 설교는 소비자 중심의 설교와 반대에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듣지 않으려고 하기에 교회에 숫자가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명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볍게 여겨진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회복하는 길은 바로 강단의 회복에 있습니다. 설교자는 십자가를 설교하고, 성도는 십자가를 설교하는 설교자를 소망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슴이 아프지만 영혼이 살아나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십자가 중심의 설교가 방방곡곡의 강단에서 선포되어질 때 다시금 한국 교회는 살아날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