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국교회 회복 프로젝트

교회가 살아나는 길 (1) - 교인에서 식구로

새벽지기1 2020. 1. 17. 07:15


교회가 살아나는 길 (1) - 교인에서 식구로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리라[요일 4:20]하셨습니다. 보이는 바 형제는 누구냐 하면.......그 교회의 식구입니다. 그러나 예배당에 모인 사람이 다 교회 식구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이 교회의 한 분자로 확신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교회의 사명을 자기의 사명으로 알고 나아갈 때 비로소 식구가 되는 것이지 ‘나는 이 교회의 교적을 가지고 있다’ 하는 정도로 식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교적 상으로 이 교회 교인이라는 증명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이지 이 교회를 참으로 받들고 나아가는 식구라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그리고 자기가 거룩한 교회의 지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꾸 주는 사람이 교회의 식구입니다.”

 

김홍전 목사님의 설교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건강한 교회의 표지가운데 하나는 바로 “식구”됨에 있습니다. 식구가 되어 서로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같이하고, 영적인 여정에 함께 동참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자기가 이 교회의 한 분자로 확신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교회의 사명을 자기의 사명으로 알고 나아갈 때 비로소 식구가 되는 것”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단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친목과 유익을 위하여 모이는 회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종교를 가장한 이익집단에 불과합니다. 필요에 의하여 예배하고 봉사한다면 결코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모임에서 성경이 강조하는 사랑을 볼 수 없습니다. 교회는 가족들의 모임입니다. 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식구입니다. 함께 영의 양식을 먹는 가족입니다. 서로에 대하여 잘 알고 있기에 무엇이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려고 힘을 씁니다.

 

교회가 가족이며 모두가 한 식구라는 인식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이 무디어지면 교회는 그 정체성을 잊어버리게 되고 사람의 모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커피 먹을 장소가 필요해서 교회를 하지 않습니다. 책 볼 장소가 부족해서 교회를 세우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러한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여주는 실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모습에서 식구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작은 교회이든 큰 교회이든 대동소이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특징인 식구 됨이 사라진다면 그 모임은 더 이상 교회로 존재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교회들은 식구 됨을 소중하게 여기기보다는 점점 커지기만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중형교회 이상 만 되어도 식구들 간에 서로 알지 못합니다. 한 집에 사는 데 그 사람이 형제인지, 남남인지 알지 못하는 우스운 일이 일어납니다. 오직 자신이 관계된 공간 안에서만 소통 할 뿐입니다. 그러나 목사도 교인을 알지 못하는 우스운 일이 일어납니다. 대형교회는 더욱 한심해집니다. 보통 1-5부정도 드리는 교회들은 예배가 교체되는 시간에 시장 바닥을 방불하게 합니다. 나가는 이와 들어가는 이가 뒤 섞여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 구경하고, 찬양 콘서트보고 돌아가는 형국이 됩니다. 그래서 체면 문화가 강한 민족이기에 큰 교회 다니는 자부심으로 작은 문제들은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불편한 문제가 아닙니다. 참된 교회인지 아닌지의 문제입니다. 교회에 속한 지체들이 식구가 되지 않으면 교회도 세상처럼 돈과 시스템에 의하여 돌아갑니다. 아마 우리 집안이 그렇게 돌아간다면 다 미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미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식구가 아니라 교인으로 다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인으로 북적거리면 곧 망하는 징조입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사랑의 책무도 감당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의지대로 살아간다면 교회는 아래로부터 무너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단순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양이 목자를 모릅니다. 더 무서운 것은 목자가 양을 잘 모릅니다. 그러기에 서로에 대하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무슨 기도를 하겠습니까?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다가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교회의 회복은 바로 가족 됨에 있습니다. 교회의 교인이 아니라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식구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식구로서의 가치를 향유할 수 없는 구조를 분립되어야 합니다. 가족의 모습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의 크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교회들은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들어 갈 수 있는 건물을 아예 짖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1,2부 예배 이상은 폐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마다 버스를 돌리는 행위도 그만 두어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예배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때 가족인지 교인인지가 들어납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하나님이 판단하지지만 가족인지 교인인지는 우리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 교회라는 말로 화상 예배를 드리는 일들도 멈춰야 합니다. 이런 일이 있으니까 목사가 죽었는데 영상예배로 교회로 모이는 교인들이 생기는 일입니다. 아마도 자신들의 부모님의 목소리를 죽은 뒤에도 계속 듣고 있다면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교회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교회가 교인들의 집합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모이는 집단은 교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교회는 식구들이 모여서 함께 삶을 나누고, 누리고 섬기는 가족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 사실을 알고서 가정교회라는 말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지금 교회들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주시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여 무한정 교회당을 크게 짖고. 1,2,3부등 예배 숫자를 늘리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예배당의 크기와 예배 순서 등을 고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이 몰려오면 분립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교회의 정신으로 못을 박아 놓는다면 교회는 가족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교인으로만 있고 싶어 하는 이들을 식구로 맞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교회를 등지는 것은 교회가 가족의 역할을 못하고 이익 집단의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회복은 바로 교회의 모습에 있습니다. 교회가 가족의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인으로 모이는 곳이 아닌 식구로 모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이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교회를 살리고 싶다면 가족의 가치를 유지하는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다른 것에 있지 않고 식구 됨에 있습니다. 그리고 식구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식구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