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말 적고 실천적 믿음을!

새벽지기1 2018. 1. 10. 07:11


20대 시절 청년부 회원이었을 때가 있었다. 형님뻘 되는 한 분이 새로운 교회 일원이 되었다.

후에 그가 고백했지만 교회당을 찾은 이유는 참한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진실을 밝혔다.

그의 행동을 남달랐다. 그래서 교회의 신앙을 가진 지 몇년 되지 않아 청년부를 회장식을 맡았다.

회의를 진행하는데 매우 자연스럽게 지도력을 발휘했다.

나는 그의 지도력이나 회의 진행에 감명 받았다.

"저렇게도 대중을 잘 인도하는 자가 있구나!" 그

의 사건 처리나 지도력을 면밀히 지켜보곤 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2001년 학위를 받고 잠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강의 맡을 학교를 소개 받았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강의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그 방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대중적 강의를 잘 하는 자로 김용옥을 추천했다.

이전까지 그가 누구였는지 알지 못했으나 그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시청하면서 아주 조금 배우기도 했다.


귀국하여 홀로 생활했기에 적적해서 지방에서 상경하는 제자들이나 가족을 외국에 두고 나처럼 혼자 와서 강의를 맡은 후배 교수와 한방에서 지내곤 했다. 그 교수가 나에게 추천하는 것은 "코메디"프로였다.

한국방송 프로그램에 무관심했던 나는 정말 관심도 없이 그의 말을 들었으나

지속적으로 또 매스콤을 통해 정보를 나에게 알려주기에 이따금 보곤 했다.

개그맨들이 정말 말을 잘했다. 대중들에게 웃음을 전달해 주는 기교는 놀라웠다.

자신의 바보처럼 행동할 때 대중은 좋아하며 폭소를 터뜨리곤 했다.


불신자나 비신자가 정통 신앙인을 바라볼 때 말쟁이처럼 보일 것이다.

뭔가를 배웠기에 할 말이 많고, 뭔가를 들었기에 대답할 것도 많다.

직접 읽은 것은 아니지만 늘 배우고 듣기 때문에 간접적 지식이 생긴 것이다.

마치 청소년이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도 이성적이 되면서

중학교에서나 고등학교에서 간접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면서

고리타분하게 보이는 부모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여긴다.


기독교인은 왜 말쟁이로 보일까?

말쟁이라는 용어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들리진 않는다. 그 이유는? 행동이다. 삶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언행일치가 어렵기 때문에 말로서 포장하려고 한다.

인간, 아니 기독교인 말쟁이처럼 보이는 것은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실제로 삶으로 증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이유 없는 반항을 일삼는 삶과 유사하다.


우리가 말쟁이이가 되는 것은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의 결여에서 나온다.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자.

말보다 실천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인지 아니면 실천보다 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지?

말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것은 실천이다.

바꾸어 믿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고 하면서 그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

그 믿음은 거짓 믿음이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속마음을 자신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이 판단할 수 있을까?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사도 야고보가 우리에게 경고한다.

말 적고 실천적 믿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