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영원한 세상을 바라본다.

새벽지기1 2018. 1. 2. 12:48


오래 전 함께 셋방살이를 함께 했던 이웃 부부가 있었다.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나는 그 유아를 참 귀여워했고, 함께 하는 시간도 보냈다.

2년 가량 지난 후 우리는 이사를 갔고, 얼마 후 거리에서 만났는데 그 아이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형! 형! 하면서 따랐던 아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다니?

우리는 이렇게 과거를 잘 잊고 사는 존재인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40대의 일까지 하나씩 기억했다.

놀라운 일이다. 일반인들은 그렇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잊고 산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분명히 지냈는데 자세한 기억이 없다.

나의 인생이었는 데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다니?

잊어버리는 것도 유익한 것이라고 하지만 좋은 기억도 잊고 사니 이것이야말로 절망이 아닌가?


결혼한 후 30년이 훌쩍 지났다. 자녀가 30세가 넘었다.

장난꾸러기 아들 샘이 장가를 간단다.

허허! 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나의 과거를 되롤려본다.

모친도 나를 보고 그렇게 여겼을까?

난 당시 자신이 있었다. 어떤 가정을 꾸밀 것인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자녀가 그렇지 못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

또는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당황스런 표현을 가지는 것일 것이다.

부모가 날 신뢰한 것처럼 자녀를 믿어야 한다.

지나고 나면 기억하지 않은 과거를 그들도 살 것이다.


자녀를 갖게 되면서 난 잊힌 과거를 떠올렸다.

나도 그렇게 살았고 말했고 생각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잊힌 과거들이지만 문턱 떠올리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귀하기도 하다.

자녀의 성장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이와는 달리 부모를 보면서 나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여전히 몰랐다.

이제 부모를 모두 잃은 가운데 난 나의 미래를 미리 예측해 본다.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인생을 끝낼 것인지 알게 된다.

이런 모든 지식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은혜이다.


자신도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 사는데 자녀를 통해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부모를 통해 나의 미래를 예측하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부모를 잃고 나면, 이제 나 혼자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단 부모의 떠남을 기억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 무턱대로 철부지처럼 살아선 안 된다.

부모가 권한 말씀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하나씩 되씹으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영원한 세상을 바라본다.

인생이 부정적이든 안타까운 것이기에 미래의 영원한 것을 마냥 바라거나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이다.

현실의 긍정적 삶은 미래를 준비하게 되어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현실을 긍정적으로 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진정한 현실의 성실은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연결된다.

오늘은 내일은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역이다.

인간이 무슨 계획을 세운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분의 영역이다.

나의 영역은 가까운 과거를 통해 오늘을 통해 미래를 하나씩 알면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