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온전한기독인

[1-2-3] 지성의 적절한 찰용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증거를 강화한다

새벽지기1 2016. 7. 27. 07:48


○지성의 적절한 찰용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증거를 강화한다


복음 전도를 순전히 감정적인 견지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복음 전도의 평판이 나빠진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적 복음 전도에 충실하려면, 우리는 사람들의 감정에는 물론 지성을 통하여 양심과 의지에도 호소해야 한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너무나 분명하게 지성을 강조한다. 누가는 거듭해서, 사도들이 전도 집회를 가진 후 , 많은 사람들이 ‘권함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도 끝 무렵에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만일 대학교에서 전도 집회를 연다면, 우리는 100명이 회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지 100명이 권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 더 성경적일 수 있다. 사도들은 복음의 진리를 논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논하였으며, 성경에서 추론하였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성경적 논증을 활용하는 데 성령을 의지했다.


논증과 성령을 서로 대치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령은 성경적 논법을 사용하시며, 바로 이 때문에 바울은 때때로 한 장소에서 오랜 기간 머물렀다. 가장 극적인 예는 에베소에서 생긴 일이다. 에베소에 도착한지 석 달 후에 바울은 회당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두란노 서원 - 짐작컨대 그 곳은 세상의 일반적인 회관이었을 것이다 - 을 빌려 거기서 이 년 동안 매일 강의를 했다. 정확한 원문은, 바울이 제오시부터 제 십시까지 즉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일 5시간 강의를 했다고 말한다. 그 강의는 매일 5시간씩 2년에 걸쳐 행해졌다. 바울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었다면 - 추측컨대 그렇게 했을 것이다 - 복음을 논하는 데 3,120시간을 투자한 셈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장날에 각기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 어떤 사람은 장을 보러, 어떤 사람은 정치가와 면담하러, 또 어떤 사람은 친척을 만나러 ‐ 에베소에 올라왔다. 그들이 에베소에 있는 동안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바울의 강의를 듣는 것이었으리라! 바울은 매일 5시간씩 강의를 했고, 사람들은 두란노 서원에 들러 회심했으며, 거듭나서 자신의 마을로 돌아갔고 하나님의 말씀은 아시아 전역에 퍼져 나갔다.


지성을 적절하게 활용하게 되면, 우리의 증거는 강화될 수 있다. 앞에서의 세 가지 논거는 우리의 지성을 예수의 주 되심 아래 종속시켜야만 함을 보여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지성에서도 주님이신가? 다음 구절을 보라. 이것은 우리의 영적 순례와 그것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요 13:13)고 말씀하신다.


생과 주는 단순히 그들이 현실 세계에 증거 해야 하는 어떤 호칭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의 선생이며 너희는 나의 제자들이다. 나는 너희들의 주며 너희는 나의 종들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선생이시라면 우리는 그 분께 의견 차이를 주장할 자유가 없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라면 우리는 그 분께 불복종할 자유가 없다. 여러분은 지성을 예수님의 주 되심 아래 복종시켰는가? 여러분은 여전히 그에게 의견 차이를 주장할 자유를 취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러분의 지성을 예수님의 가르침에 복종시키는가?


예수님의 가르침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는 권위로 구약을 인준하셨으며, 또 사도들을 지명함으로써 신약을 준비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에 복종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적으로 회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올바로 회심하는 것이 아니다. 지성을 예수님의 주 되심 아래 복종시키지 않았다면, 지적으로 회심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우리 지성의 주님이신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