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설교자 이처럼 청교도들이 예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할 때 그것은 명백히 설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교는 하나님의 심판과 위로를 담고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자비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모든 설교자가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 되기 전에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따라서 청교도목사들은 성직에 취임할 때에 당연히 설교를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직무로 삼겠다는 개인적인 헌신의 맹세를 요구받았고, 신자들은 그가 선포하는 순수한 말씀에 열심을 품고 귀를 기울이겠다는 서약을 요구받았다. 그들이 원 계시가 담긴 성서 원어 연구를 목사의 당연한 의무로 받아 들였던 것도 바로 예배에 있어서 설교가 이처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상 때문이었다. 이한 맥락에서 볼 때 설교가 예배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평이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그래서 리챠드 백스터(Richard Baxter)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명백한 말은 가장 묵직한 문제들을 다룸에 있어서 가장 유익한 웅변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하기 위하여 그들은 결코 현학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지 아니하였다. 그들의 설교가 진지했던 것은 유모어 감각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드러내려는 열망때문이었다. 그들은 학문적으로 박식한 사람들이었으나 예배자들의 교육 수준이 낮은 것이 설교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으로 소화하지 못한 내용들을 관용구, 전문용어, 과장법, 꾸밈, 학적인 체하는 표현을 통해 설교하는 것은 곧 성도들의 이해를 가리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서 순수한 성경의 진리를 단순하고 평이한 방법으로 회중들에게 이해시키는 설교 방식을 택함으로써 그들의 예배로 하여금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조국교회의 예배의 위기는 단지 성직자의 화려한 복식이나, 아름다운 실내 장식, 열정적인 찬양팀의 운영이나, 전문적인 성가대의 운영이나 예배 순서의 현대적인 변화 등을 통하여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한 거룩한 진리에 사로잡힌 설교자와 예배를 통한 하나님을 갈망하는 예배자들과 그들의 만남에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없이는 거룩한 예배가 될 수 없다. 자료 : 불꽃 김남준목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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